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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별아,,[가미가제 독고다이] 어두운 역사의 희비극

by 서랑 (瑞郞) 2010. 8. 30.

 

 

교문을 사이에 두고 학생과 전경의 공방전이 있었다. 확성기에선 노래가 흘러나왔고, 반대편 확성기에선 선무방송이 흘러나왔다.

소위 지랄탄이란 이름의 최루탄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춤을 추었고, 학생들은 오후 내내 흩어졌다 모이기를 일삼아 했다. 도망치다 모이면서 돌맹이를 주워 날랐다. 어떤 학생은 두손으로, 어떤 학생은 우유박스로, 어떤 학생은 한 아름 안고 돌을 모았다. 아마 보진 못했으나 행주대첩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시절 처음 작가 김별아를 봤다. 그땐 작가 김별아가 아니라 총학생회 집행부 김별아 선배였다.

나이 터울은 크지 않지만, 재수를 하고 들어간 나로서는 당시엔 총학생회 집행부는 하늘같은 선배였다. 그러니 나에게 작가 김별아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안다고 말할 수도 있고, 모른다고(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그 시절 일처럼 데모를 하고 다녔다. 요즘 드라마 시대극의 한 장면에서와 같이 극적인 사건들은 그 시절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은 없었다. 독재정권의 폭압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살아가는 시대를 아파했을 뿐이다. 어떤 이는 투철하고 똑똑한 모양으로, 어떤이는 헛점투성이에 엉성한 모양으로, 어떤 이는 이도저도 아닌 잊혀져도 그만인 모습으로,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청실홍실, 훼드라, 오늘의 책, 알서점, 백두갈비, 보은집, 백마,,, 그 시절 신촌을 거닐며 기웃거리던 집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지고 흔적은 적다. 하지만 몇몇을 만나면 그 시절, 90년대를 사이에 둔 경계의 시대도 분명 뼈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며 개인사의 한 장이었다고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1990년 대학에 들어간 나의 대학 시절은 희극이었을까 비극이었을까?

 

<<가미가제 독고다이>>를 읽다가 일제시대의 한 자락과 내가 대학다니던 시절의 한 자락을 연상했다면 지독한 자기중심적인 해석이라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허나 어쩌랴.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데 궤궤한 기분이 들더라도 뭐라 하겠는가.

구한말에서 일제시대로 접어들어 출세한 주인공의 아버지는 우리 시대에도 충분히 많았다. 전쟁통에 배를 주렸으나 산업독재시절에 어찌어찌하여 부자가 되고 행세하며 사는 사람이 지금도 있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학에서 <주의자>로 활동하다가 변절하여 대동아전쟁의 참전을 광고하는 주인공의 형 하경식은 우리시대의 원희룡, 김문수, 이재오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한 시절을 방탕하게 살다가 가미가제 특공대에서 훈련을 받으며 죽음의 길로 보내어졌던 주인공 하윤식의 모습은 귀하게 자라 청년실업과 우울증의 늪으로 빠지는 현대의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욕망과 권력에 아부하고 빌붙어 살수 있다면 뭐든 할 수밖에 없다고 자위하는 사람들은 요즘에도 흔히 말한다. "모윤숙, 최남선, 이광수를 욕하기 힘들다. 그들이 살던 시대의 아픔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보편적 보수주의의 한 면이지 않은가?

 

뻔히 보이는 것이 잘 못 되었다고 알면서, 겪으면서, 당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았고 많다. 유구한 우리 역사의 구비구비마다 민중이란 이름의 정직한 사람들은 그렇게 당하고 짓밟히며 살았다. 가끔 고개라도 들라치면 그 고개를 자르는 일들이 어디 한두 번인가. 주인공의 할머니 올미는 윤간을 당하고도 그 한과 서러움을 끝내 어찌 해 보지 못하고 죽어갔고, 할아버지 쇠날도 온갖 치욕과 굴욕을 견뎌야 했다. 아버지를 부정하고 권력에 빌붙어 돈벌이를 하여 일본놈들 앞잡이로 살아가던 주인공의 아버지 훕시는 족보를 사고, 신여성과 결혼하고, 무슨 위원이랍시고 명함을 걸고 다녀도, 매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 돈과 명예에 집착하는 것이다. 현대의 어느 시점 강남 부동산 광풍의 판 복판에서 몇몇을 건져 내면 훕시와 다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당하는 사람은 뻔히 알면서도 당하고, 빼앗는 자는 인과응보의 댓가를 받지 않고(불안은 그 댓가치곤 너무 적다) 살아가는 세상이다. 책에서 그리고 있는 세상이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김별아 작가의 책이 나오고 있는데, 한 번도 들춰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다만 학생운동시절 다른 정치적 의견을 가진 집단에 있었다는 것과 뭐 그리 대단한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오는 새벽 내내 책을 읽으며 무릅을 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주억거렸다. 내가 쌓은 벽에 내가 갖혀 있었던 것이다. 시간의 순서대로 쭉 써내려간 소설, 무협지처럼 긴박감이 넘치는 구성, 형식의 단조로움을 단박에 넘어서는 사건 전개, 또 사건을 접할 때마다 묘사된 심리상태에 대한 집요한 접근 등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걸작이었다.

마지막으로 주변에서 자신을 "독고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래 독고다이라면 얼른 저 푸른 바다로 나가 부질없이 부서져도 좋다."

 

 

 

출처 : 풀처럼 자고 일고
글쓴이 : 발바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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