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참여정부 정책과 그의 업적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해는 다 풀리지 않았다. 특히 재임 기간 중 몇몇 정책은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찬반논쟁이 일었다. 대북송금 특검, 파병결정, 대연정 등이 그런 사례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그동안 자서전 <운명이다>, 회고록 <성공과 좌절>, 연구서 <진보의 미래>을 비롯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등의 저서에서 당시 배경이 설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문재인의 운명>에서는 그 과정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증언’이라는 부제만큼이나 그간 알려지지 않은 사실까지 공개됐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참여정부 핵심 인사였던 문재인 이사장의 기록을 통해 ‘그때 그 진실’을 살펴보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 회피할 수 없는 선택 먼저, 임기 첫 해 대통령이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이라크 파병’ 결정을 되돌아본다. 문 이사장은 "진보진영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린 첫 번째 계기가 이라크 파병이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결정이 대통령에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훗날 술회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통령은 “나도 개인이었다면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불가피했다”고 털어놨다. 자서전 <운명이다>의 관련 대목이다.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서 파병한 것이다.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오류의 기록을 역사의 남겨야 하는 대통령의 자리, 참으로 어렵고 무거웠다.”
대통령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무게가 느껴진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 이사장 역시 반대를 했다.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파병했다가 희생 장병이 생기게 되면 비난여론을 감당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요청에 대해 청와대와 내각의 외교-국방-안보라인은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만명 이상의 전투병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사단급 규모가 돼야 독립구역을 맡아 독립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청와대 정무분야 참모들은 파병을 반대했다. 대통령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파병을 반대하는 주장을 백번 수긍하고 공감했다.
미국의 협조는 필요하고...
그러나 그때 한국은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미국의 협조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 일각에서는 북폭이나 제한적 대북공격설이 나오고, 대북봉쇄 등의 제재조치도 제기되고 있었다. 한반도 정세불안을 이유로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한 등급 내리자 외국인 투자가 감소하는 등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대통령은 미국에 시종일관 ‘무력에 의한 대북문제 해결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천명했다. 북핵문제는 철저하게 대화를 통해 외교적 방법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소신이 확고했다. 그러나 그렇게 이끌어가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자면 그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대통령도, 청와대 참모들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 이종석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차장이 묘안을 내놨다. ‘미국의 파병요구를 받아들이되, 파병규모는 최소한으로 한다. 파병은 비전투병 3천명으로 한다. 파병성격도 전투작전 수행이 아니라 전후재건사업 지원이다’는 방안이었다. 고건 총리가 회의에서 ‘평화재건 지원부대’로 파병성격을 정리하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대통령이 그 방안을 수용했다.
대통령은 ‘파병지역도 최대한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한다, 그러면 우리 장병들의 고귀한 인명피해도 막을 수 있다’라는 방안으로 먼저 청와대 반대파를 설득하고 시민사회진영도 설득해 달라고 문재인 수석에게 당부했다.
이어 대통령은 외교부와 국방부 실무책임자를 미국으로 보내 실무협의를 하고, 이종석 NSC 차장을 협상대표로 미국에 보냈다. 미국 국무부는 대체로 이해하는 반응이었지만, 국방부쪽에선 시니컬한 반응이었다. ‘1만명 이상 전투병 파병’ 운운한 우리 내부 주장이 미국쪽 기대치를 높여 놓은 것이다. 나중에 비공식 루트로 들어온 부시 행정부 반응은 고맙다는 것이었다.
대통령 ‘정의로운 전쟁’ 표현 쓰지 말라 문 이사장은 파병방침 발표문안 결정 과정의 뒷이야기도 공개했다. 외교부가 준비해온 초안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때문에 치러지는 이번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이며 우리의 파병이 향후에 전후재건 복구사업 등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대통령은 “나는 이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인지 모르겠다”면서 그 표현을 쓰지 못하게 했다. 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경제적 이익을 위해 우리 젊은이들의 고귀한 생명을 사지에 내모는 일은 할 수 없다”고 했다. 경제적 이익은 파병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국민들에게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이란 현실적 이해로 파병한다는 점을 솔직하게 밝히라고 지시했다.
파병을 계기로 북핵문제는 대통령이 바라던 대로 갔다. 미국 협조로 6자회담이라는 다자외교 틀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북핵문제를 외교적 방법으로 풀어갈 수 있었다. 북폭까지 주장했던 네오콘의 강경론을 누그러뜨리면서 위기관리를 해나갈 수도 있었다.
진보·개혁진영 등에서는 지금도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잘못한 일로 이라크 파병을 꼽는다. 이에 대해 문 이사장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파병 논의 당시 진보·개혁진영의 반대는 정부가 최소규모의 비전투병 파병으로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반대여론이 그같은 방식으로 반영되고, 6자회담을 통한 북핵위기 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한 사실이 드러난 지금에 와서도 파병결정이 잘못이었다고 평가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고, 우리가 파병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더 큰 국익을 위해 필요하면 파병할 수도 있고, 그것이 국가경영이이라는 것이다. 진보·개혁진영이 집권을 위해선 그런 판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문 이사장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