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윤 동주님
그립다고 써 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 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었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 만 쓰자
그립다고 써 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 만 쓰자
긴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 만 쓰자
편지 / 김 남조님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가 없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행복 / 유 치환님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르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편지 / 천 상병님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는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또 기다리는 편지 / 정 호승님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즐거운 편지 /황 동규님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 이 해인님
먼 하늘
노을지는 그 위에다가
그간 안녕 이라는 말보다
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하자
그대와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아련한 노을 함께 보기에 고맙다
바람보다 구름보다
더 빨리 가는 내 마음
늘 그대 곁에 있다
그래도 보고 싶다는 말보다
언제나 남아 있다는 말로 맺는다
몸과 마음이
무게를 덜어내고 싶을 때마다
오래도록 너를 그리워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벼워야 자유롭고
힘이 있음을 알고 있는 새야
먼 데서도 가끔은
나를 눈여겨보는 새야
나에게 너의 비밀을
한 가지만 알려주겠니?
모든이를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끈끈하게 매이지 않는 서늘한 슬기를
멀고 낯선 곳이라도
겁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담백한 용기를 가르쳐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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