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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행과 들꽃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영화. TV. 책. 명언

[스크랩] 편지

by 서랑 (瑞郞) 2009. 4. 25.
볼륨Yesterday When I Was Young (Hier Encore) - Patricia Kaas음악을 들으려면원본보기를 클릭해주세요.

 

 

 

편지 / 윤 동주님

 

그립다고 써 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 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었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 만 쓰자

 

그립다고 써 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 만 쓰자

 

긴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 만 쓰자

 

 

 

편지 / 김 남조님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가 없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행복 / 유 치환님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르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편지 / 천 상병님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는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또 기다리는 편지 / 정 호승님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즐거운 편지 /황 동규님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 이 해인님

 

먼 하늘

노을지는 그 위에다가

그간 안녕 이라는 말보다

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하자

 

그대와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아련한 노을 함께 보기에 고맙다

 

바람보다 구름보다

더 빨리 가는 내 마음

늘 그대 곁에 있다

 

그래도 보고 싶다는 말보다

언제나 남아 있다는 말로 맺는다

 

몸과 마음이

무게를 덜어내고 싶을 때마다

오래도록 너를 그리워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벼워야 자유롭고

힘이 있음을 알고 있는 새야

 

먼 데서도 가끔은

나를 눈여겨보는 새야

나에게 너의 비밀을

한 가지만 알려주겠니?

 

모든이를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끈끈하게 매이지 않는 서늘한 슬기를

멀고 낯선 곳이라도

겁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담백한 용기를 가르쳐주겠니? 

 

 

 

 

 

출처 : 나는 영혼을 적시며 서 있다
글쓴이 : 민턴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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