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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산따라강따라 <14> 월출산③ 만물을 생성하는 태반의 땅
월출산의 바위들은 절리현상으로 생겼다. 지표가 형성될 때 땅위로 솟아오른 마그마가 식으면서 수축되는 과정에서 위아래로 갈라지는 수직 절리현상이 나타난다. 월출산은 동시에 수평절리까지 발생한 후 오랜 세월동안 풍화작용을 일으키며 지금의 돌밭이 생긴 것이다.
월출산은 금강산(金剛山)이기도 하다. 증산교(甑山敎)의 창시자인 강일순이 산운(山運)을 옮긴 덕이다. 증산은 백두산의 기운을 뽑아 한라산으로 옮겼다. 이어 덕유산에 뭉쳐있는 기운을 뽑아서 무등산으로 옮긴 다음, 금강산의 기운을 뽑아 월출산으로 옮겼다. 백두산에 천지가 있듯 한라산에는 백록담이 있다. 1만2000봉으로 이뤄진 금강산처럼 월출산에서도 1만2000의 기운을 감지한 것이다. 금강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품은 ‘복제 금강산’이 월출산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이 자리 잡은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국보144호)이 있는 산이 월출산이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은 몸의 비례가 해학적이고 선이 투박하여 자연미를 거스르지 않고 있다. 사람이 만든 이 인공 석상조차 월출산에서는 자연산 수석 작품이 되었다.
산에 있는 모든 구름다리 중 가장 길다는 월출산의 출렁다리는 길이가 52m나 된다. 120m 높이의 하늘에 매달린 출렁다리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고 함께 건너가야 한다. 월출산 꼭대기에 오르려면 통천문(通天門)을 통과해야 한다. 등산이 아니라 비상(飛上)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바위 굴을 벗어나면 거기에 달나라, 하늘이 있다.
정상에는 월출산 소사지(小祀址)라는 제단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 이래 국가 차원의 천제(天祭)가 올려지던 곳이라는 표지다. 영험하지 않는 곳에 제천의식이란 있을 수 없다.
도갑산 아래 무위사(無爲寺)는 신라 고승 원효의 작품이라 전한다. 무위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존재는 본존불 탱화다. 탱화 속 관음보살의 눈에 눈동자가 없다. 그 연유는 이렇다.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노거사(老居士)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다음 그린 그림들이었다. 하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주지가 법당 안을 엿봤고, 파랑새는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입에 붓을 문 채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려던 새였다. 그래서 관음보살의 눈에 눈동자가 없다.
월출산은 두 얼굴의 별천지다. 영암에서 바라보면 악산(惡山)이다. ‘나쁜 산’이 아니라 ‘산세가 험한 산’이다. 강진 등 해안 쪽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고 순한 모습이다.
영암의 월출산은 돌과 뼈로 그린 동양화 한 폭이다. 흙산은 재물, 돌산은 인물을 허락한다. 영암에서 도인(道人)이 많이 나오고, 강진 등지가 부호(富豪)를 대거 배출하고 있는 원인이다.
강진의 월출산은 흙이 풍성한 육산(肉山)이다. ‘인물과는 인연이 없어도 부자는 많다’는 게 강진의 자긍 겸 자조다. 천불산(天佛山), 만덕산(萬德山), 억불산(億佛山), 그리고 조산(兆山) 등 어마어마한 돈의 액수가 땅이름으로 굳은 곳이 강진 주변에 유난히 많다.
영암에서 인물 자랑을 해서는 안된다. 월출산 북쪽의 영암은 바둑황제 조훈현을 낳았고, 남쪽의 강진에서도 바둑의 명인 김인이 나왔다. 조훈현의 바둑은 자유롭고 신묘하다. 김인의 기풍은 온화하고 부드럽다. 월출산이 점지한 인걸들의 면면 또한 월출산 두 얼굴의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월출산의 이러한 양면성을 고루 흡입한 인물도 있다. 고려 초기의 문신 최지몽이 대표적이다. 경사(經史)에 통달했을 뿐더러 천문(天文)과 복서(卜筮)에도 정통했다. 18세 때 태조 왕건의 해몽 요청을 받고 “장차 삼한(三韓)을 통합해 다스릴 길조”라고 풀었다. 매우 기뻐한 태조가 지어준 이름이 바로 지몽, ‘꿈을 안다’는 의미다.
최지몽은 도선이 태어난 영암 구림(鳩林) 마을 출신이다. 명필 석봉(石峯) 한호도 구림마을에서 글을 익히며 성장했다.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하며 촛불을 끈 한석봉 어머니의 타이름이 있던 곳도 구림마을이다.
월출산은 음양의 통합된 기운이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한 문화를 꽃피게 했다. 월출산의 뛰어난 예술성 때문에 국내의 산들 중에서는 가장 많은 예술로 표현되어진 산이 월출산이다. 시나위 가락에 판소리 가락을 도입해 오늘날과 같은 가야금 산조의 틀을 만든 김창조에게 월출산은 예술혼이었다. 이이, 송익필 등과 함께 8문장으로 불린 최경창은 월출산 태생이 아니랄까봐 시와 서화, 피리 연주에 능한 예인이었다.
월출산에 올랐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극찬일색이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은 ‘달은 허공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서 오르더라’고 월출산을 묘사했다. 고산(孤山) 윤선도는 ‘월출산 높더니만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황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는구나’라며 월출산 선경(仙境)을 가리는 안개를 탓했다.
노산(鷺山) 이은상은 ‘월출산 구정봉(九井峰)이 창검을 들고 허공을 찌를 듯 늘어섰는데 천탑도 움직인다. 어인 일인고. 아니나 다를세라 달이 오르네’라면서 무릎을 쳤다. 이순신 장군도 ‘월출산의 명승을 상상하면 이 병란 중에서도 늘 생각이 난다’며 동중정(動中靜)했다.
오이로 잉태한 도선이 땅의 아들이라면, 주몽은 하늘의 아들이다. 예전에 구명시식에 등장한 주몽의 영가(靈駕)는 어찌 들으면 함경도 사투리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주문이다 싶은 말로 필자에게 ‘월출산의 500년 주기설’을 귀띔했다.
주몽은 은빛 옷에 금·은으로 장식한 관을 쓰고 있었다. 움직여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머리에 꽉 맞춘 관이다. 주몽의 영가는 신하들을 대동하고 출현했다. 말발굽·말울음 소리, 몇 백 명이 빠르게 걷는 소리도 들렸다. 신하들은 대부분 무장한 군인이었는데 뜻밖에도 조그만 활을 갖고 있었다. 어른 팔길이보다 약간 긴 정도였다. 강궁(强弓)이라고 해 엄청 큰 활만 상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주몽은 유독 ‘500년’을 강조했다. 왕인 박사 이후 500년이 흐른 뒤 도선을 등장시켜 한 시대를 풍미하게 했듯이 월출산은 500년 단위로 위대한 인물을 배출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500년 주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유명한 풍수가 손석우의 영가도 “월출산에서 황제가 난다. 475년간 계속되는 나라를 건국할 인물”이라며 생전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는 인물이 월출산에서 난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손석우는 “음택(陰宅) 명당, 즉 아주 좋은 묏자리가 월출산에 숨겨져 있다”고 강조할 뿐이다. 그렇다고 월출산에 조상을 암장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월출산은 속인이 묻힐 곳이 아니다. 이곳은 신선들의 휴양지일 따름이다.
가수 하춘화 덕분에 월출산은 한결 친근해졌다. 하춘화의 ‘영암 아리랑’은 ‘월출산 아리랑’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풍년이 온다. 서호강 몽햇들에 풍년이 온다. 흥타령 부네. 목화짐 지고 흥겹게 부네. 달을 보는 아리랑. 임 보는 아리랑.’
달의 뒷면은 보이지 않는다. 월출산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음과 양이 교합하여 만물을 생성시키는 여성의 자궁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듯, 월출산의 서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세인들에게 기암괴석으로 현몽하여 잠시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지배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궁금해 한다. 어떻게 생겼을까, 보이는 세계와 어떤 관계일까 하고 말이다. 혹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조금이라도 보고 싶다면, 영암의 월출산으로 가보시라.
그 곳에 딴 세계가 펼쳐져 있으니까.
<사진> 천황봉 제단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www.hooam.com 【영암=뉴시스】
월출산의 바위들은 절리현상으로 생겼다. 지표가 형성될 때 땅위로 솟아오른 마그마가 식으면서 수축되는 과정에서 위아래로 갈라지는 수직 절리현상이 나타난다. 월출산은 동시에 수평절리까지 발생한 후 오랜 세월동안 풍화작용을 일으키며 지금의 돌밭이 생긴 것이다.
월출산은 금강산(金剛山)이기도 하다. 증산교(甑山敎)의 창시자인 강일순이 산운(山運)을 옮긴 덕이다. 증산은 백두산의 기운을 뽑아 한라산으로 옮겼다. 이어 덕유산에 뭉쳐있는 기운을 뽑아서 무등산으로 옮긴 다음, 금강산의 기운을 뽑아 월출산으로 옮겼다. 백두산에 천지가 있듯 한라산에는 백록담이 있다. 1만2000봉으로 이뤄진 금강산처럼 월출산에서도 1만2000의 기운을 감지한 것이다. 금강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품은 ‘복제 금강산’이 월출산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이 자리 잡은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국보144호)이 있는 산이 월출산이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은 몸의 비례가 해학적이고 선이 투박하여 자연미를 거스르지 않고 있다. 사람이 만든 이 인공 석상조차 월출산에서는 자연산 수석 작품이 되었다.
산에 있는 모든 구름다리 중 가장 길다는 월출산의 출렁다리는 길이가 52m나 된다. 120m 높이의 하늘에 매달린 출렁다리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고 함께 건너가야 한다. 월출산 꼭대기에 오르려면 통천문(通天門)을 통과해야 한다. 등산이 아니라 비상(飛上)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바위 굴을 벗어나면 거기에 달나라, 하늘이 있다.
정상에는 월출산 소사지(小祀址)라는 제단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 이래 국가 차원의 천제(天祭)가 올려지던 곳이라는 표지다. 영험하지 않는 곳에 제천의식이란 있을 수 없다.
도갑산 아래 무위사(無爲寺)는 신라 고승 원효의 작품이라 전한다. 무위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존재는 본존불 탱화다. 탱화 속 관음보살의 눈에 눈동자가 없다. 그 연유는 이렇다.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노거사(老居士)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다음 그린 그림들이었다. 하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주지가 법당 안을 엿봤고, 파랑새는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입에 붓을 문 채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려던 새였다. 그래서 관음보살의 눈에 눈동자가 없다.
월출산은 두 얼굴의 별천지다. 영암에서 바라보면 악산(惡山)이다. ‘나쁜 산’이 아니라 ‘산세가 험한 산’이다. 강진 등 해안 쪽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고 순한 모습이다.
영암의 월출산은 돌과 뼈로 그린 동양화 한 폭이다. 흙산은 재물, 돌산은 인물을 허락한다. 영암에서 도인(道人)이 많이 나오고, 강진 등지가 부호(富豪)를 대거 배출하고 있는 원인이다.
강진의 월출산은 흙이 풍성한 육산(肉山)이다. ‘인물과는 인연이 없어도 부자는 많다’는 게 강진의 자긍 겸 자조다. 천불산(天佛山), 만덕산(萬德山), 억불산(億佛山), 그리고 조산(兆山) 등 어마어마한 돈의 액수가 땅이름으로 굳은 곳이 강진 주변에 유난히 많다.
영암에서 인물 자랑을 해서는 안된다. 월출산 북쪽의 영암은 바둑황제 조훈현을 낳았고, 남쪽의 강진에서도 바둑의 명인 김인이 나왔다. 조훈현의 바둑은 자유롭고 신묘하다. 김인의 기풍은 온화하고 부드럽다. 월출산이 점지한 인걸들의 면면 또한 월출산 두 얼굴의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월출산의 이러한 양면성을 고루 흡입한 인물도 있다. 고려 초기의 문신 최지몽이 대표적이다. 경사(經史)에 통달했을 뿐더러 천문(天文)과 복서(卜筮)에도 정통했다. 18세 때 태조 왕건의 해몽 요청을 받고 “장차 삼한(三韓)을 통합해 다스릴 길조”라고 풀었다. 매우 기뻐한 태조가 지어준 이름이 바로 지몽, ‘꿈을 안다’는 의미다.
최지몽은 도선이 태어난 영암 구림(鳩林) 마을 출신이다. 명필 석봉(石峯) 한호도 구림마을에서 글을 익히며 성장했다.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하며 촛불을 끈 한석봉 어머니의 타이름이 있던 곳도 구림마을이다.
월출산은 음양의 통합된 기운이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한 문화를 꽃피게 했다. 월출산의 뛰어난 예술성 때문에 국내의 산들 중에서는 가장 많은 예술로 표현되어진 산이 월출산이다. 시나위 가락에 판소리 가락을 도입해 오늘날과 같은 가야금 산조의 틀을 만든 김창조에게 월출산은 예술혼이었다. 이이, 송익필 등과 함께 8문장으로 불린 최경창은 월출산 태생이 아니랄까봐 시와 서화, 피리 연주에 능한 예인이었다.
월출산에 올랐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극찬일색이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은 ‘달은 허공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서 오르더라’고 월출산을 묘사했다. 고산(孤山) 윤선도는 ‘월출산 높더니만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황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는구나’라며 월출산 선경(仙境)을 가리는 안개를 탓했다.
노산(鷺山) 이은상은 ‘월출산 구정봉(九井峰)이 창검을 들고 허공을 찌를 듯 늘어섰는데 천탑도 움직인다. 어인 일인고. 아니나 다를세라 달이 오르네’라면서 무릎을 쳤다. 이순신 장군도 ‘월출산의 명승을 상상하면 이 병란 중에서도 늘 생각이 난다’며 동중정(動中靜)했다.
오이로 잉태한 도선이 땅의 아들이라면, 주몽은 하늘의 아들이다. 예전에 구명시식에 등장한 주몽의 영가(靈駕)는 어찌 들으면 함경도 사투리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주문이다 싶은 말로 필자에게 ‘월출산의 500년 주기설’을 귀띔했다.
주몽은 은빛 옷에 금·은으로 장식한 관을 쓰고 있었다. 움직여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머리에 꽉 맞춘 관이다. 주몽의 영가는 신하들을 대동하고 출현했다. 말발굽·말울음 소리, 몇 백 명이 빠르게 걷는 소리도 들렸다. 신하들은 대부분 무장한 군인이었는데 뜻밖에도 조그만 활을 갖고 있었다. 어른 팔길이보다 약간 긴 정도였다. 강궁(强弓)이라고 해 엄청 큰 활만 상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주몽은 유독 ‘500년’을 강조했다. 왕인 박사 이후 500년이 흐른 뒤 도선을 등장시켜 한 시대를 풍미하게 했듯이 월출산은 500년 단위로 위대한 인물을 배출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500년 주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유명한 풍수가 손석우의 영가도 “월출산에서 황제가 난다. 475년간 계속되는 나라를 건국할 인물”이라며 생전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는 인물이 월출산에서 난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손석우는 “음택(陰宅) 명당, 즉 아주 좋은 묏자리가 월출산에 숨겨져 있다”고 강조할 뿐이다. 그렇다고 월출산에 조상을 암장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월출산은 속인이 묻힐 곳이 아니다. 이곳은 신선들의 휴양지일 따름이다.
가수 하춘화 덕분에 월출산은 한결 친근해졌다. 하춘화의 ‘영암 아리랑’은 ‘월출산 아리랑’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풍년이 온다. 서호강 몽햇들에 풍년이 온다. 흥타령 부네. 목화짐 지고 흥겹게 부네. 달을 보는 아리랑. 임 보는 아리랑.’
달의 뒷면은 보이지 않는다. 월출산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음과 양이 교합하여 만물을 생성시키는 여성의 자궁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듯, 월출산의 서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세인들에게 기암괴석으로 현몽하여 잠시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지배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궁금해 한다. 어떻게 생겼을까, 보이는 세계와 어떤 관계일까 하고 말이다. 혹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조금이라도 보고 싶다면, 영암의 월출산으로 가보시라.
그 곳에 딴 세계가 펼쳐져 있으니까.
<사진> 천황봉 제단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www.hooam.com 【영암=뉴시스】
출처 : 시사랑(언덕위에)
글쓴이 : 애플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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