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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행과 들꽃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My idea & story

류현진 야구중계 때문에 포기한 유명산...근데~

by 서랑 (瑞郞) 2013. 5. 18.

 

  올해 초 부터 가려던 100대 명산의 하나로 이름이 유명인 유명산

  어제 초파일은 전날밤의 과음으로 인한 숙취로 포기하고 오늘 5.18은 메이저리그 류현진이 야구중계를 보려고 포기

  근데 6회초 4-2로 앞선 상태에서 투구수 100개가 넘어 마운드를 내려 왔는데

  후속 투수 둘이서 만루 홈런을 두들겨 맞으며 지지고 볶더니 8-5로 패 해 5승을 날려 버렸네...ㅜ

 

  낼은 비가 온대니 또 못 가고 언제나 갈꺼나~~

  대일마을에서 어비산으로 올라 유명산 중미산 삼태봉 통방산 한바쿠 돌아 보기가 이리 힘드네...

 

  1979년 박통이 유신헌법을 만들어 가며 장기집권 18년째에 궁정동 안가에서 술판을 벌이다

  자신의 부하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권총에 살해 당하고 그 혼란한 시기를 틈타

  전통이 주동이 된 신군부 세력의 모임인 하나회가 12.12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하고 계엄령을 선포  

  박통과 같이 장기집권을 하려 국민의 요구인 대통령 직접선거를 거부하고 체육관대통령선거를 유지하는 호헌으로

  국민들의 거센 반발. 민주화 요구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5.18 민주화운동 제대로 알기

 

  그당시 방송과 언론에선 북한군게릴라가 광주에 침투해 시민들을 선동. 폭동이 일어났다고 떠들어대서 나도 그런줄 알았었고

  83년 군 입대 문제로 고향에 갔다 삼청교육대에 잡혀가 반병신이 된 친구가 있었어도 그들(전통과 그 일당)의 말을 믿었었다

  84년 내가 살던 경기 성남의 신구대 근처에서 신구대 학생들의 시위현장에서 처음으로 접하게 된 광주학살현장의 사진을 보고서야

  비로소 이승만정권의 자유당. 박통의 공화당. 전통의 민정당. YS의 민자당(IMF사태). 차떼기의 한나라당. 그리고 현재의 새눌당.

  당 이름을 바꾸며 정권을 잡는 그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 그들은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자국민도 무차별로 살해한다는 것을~

 

  근래에 들어 민주당도 하는 짓거리 보면 맘에 안든다

  대선전에 국회의원 특권과 의원연금을 고친다고 하더니 5개월이 지나가는데 깜깜 무소식이고 어디서 얼핏 보니

  뭐? 때문에 못하고 있다고 하던데 지들 밥그릇인 의원연금은 한푼도 적립을 안하면서 부정선거든 뭐든 단 하루라도 의원생활을 하면  

  죽을때까지 받아 먹는 개법은 새눌당과 짝짜쿵 되어 초스피드로 만들어 버리는 꼬라지들 보니

  민주당도 이젠 새눌당과 더불어 없어져야 되겠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벌써 33년이 지났네--- 5.18 에 군부독재에 맞서다 산화하신 모든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낼은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노짱님 4주기 추모행사에  갈까?... 1주기엔 김해 봉화마을을 다녀 왔었는데~

 

 

 

※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지정곡으로 하자는데 진보와 수구 세력간에 논란이 있어 노래에 관한 정보를 2014. 5. 3일 첨부 합니다

   

기원[편집]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음악인 김종률 등 광주 지역 노래패 15명이 공동으로 만든 노래극(뮤지컬) 

《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삽입되었다.[1][2] 

이 노래극은 1980년 5월 27일 5·18 민주화운동전라남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노래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합창으로 쓰이기 위하여 지어졌다.

곡은 김종률이 1981년 5월 광주에 있는 황석영의 자택에서 썼고, 가사는 시민사회 운동가 백기완이 YM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1980년 12월에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를 차용해 

황석영이 붙였다.

감시를 피해 황석영 자택에서 이동식 카세트 녹음기를 이용해 조악하게 녹음되었던 위 노래극은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현 국립 5·18 민주 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 처음 공개됐는데, 이 노래는 이후 카세트 테이프 

복사본, 악보 필사본 및 구전을 통해 민주화 및 노동운동 세력 사이에 이른바 '민중가요'로서 빠르게 유포되었고,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대표곡으로서 자리잡았다.[3]                                          

                                                                                                    [자료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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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가사 출처 : Daum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