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도는 어딜 가나 아름답다. 포물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휜 포구, 그 앞에 펼쳐진 넓고 푸른 바다, 그 남해 바다 위에 꿈 실은 고래처럼 둥둥 떠 있는 수많은 섬들…. 이러한 파라다이스 같은 풍광은 같은 높이에서는 제 맛을 느낄 수 없으리라.
거제의 산들은 바다에서 보면 뭍의 산봉과 다름없이 불뚝 솟구친 산봉이요 뚝 떨어진 산릉이지만 올라보면 다르다. 놀라울 만큼 울창한 숲이 산을 덮고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기운찬 산릉이 이어진다. 산릉은 그냥 뻗지 않는다. 곳곳에 불쑥불쑥 솟구치거나 간간이 기암을 얹고 있어 또한 변화롭고 기운차다. 그 산봉과 기암이 멋진 조망대인 것이다.
↑ [월간산]산과 바다와 섬의 매혹적인 풍광이 샘났는지 하늘은 덧칠하려는 듯 내려앉고 있다. 취재팀이 망산을 지나 소사나무 울창한 바위능선을 따라 내봉산으로 향하고 있다. |
이러한 거제의 산봉은 한려해상의 풍광을 맘껏 조망할 기회를 준다. 어떤 산봉은 영혼을 빨아들일 듯 맑고 푸른빛을 띤 바다가 발아래 펼쳐지는가 하면, 어떤 산허리는 부드러운 해안선이 눈에 들어와 마음 편케 하고, 또 어떤 산꼭대기는 고래 등처럼 떠오른 많은 섬들로 가득 찬 다도해가 펼쳐지면서 그림 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거제는 산과 바다, 그리고 섬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곳이다.
거제 남북종단은 이렇듯 아름답고 기운차고 변화무쌍한 거제의 명산 명봉 다섯 봉우리를 잇는 산행이다. 남으로 망산(望山·397m)에서 시작해 북으로 거제 최고봉인 가라산(加羅山·585m)을 거쳐 노자산(老子山·565m)으로 이어진 뒤, 해발 30m 높이의 동부저수지로 뚝 떨어졌다가 다시 북으로 선자산(扇子山·507m)을 거쳐 계룡산(鷄龍山·566m)에 올라선다. 이 산줄기는 산행의 즐거움과 조망의 멋스러움도 느끼게 하지만 여기에 내륙의 대간이나 정맥을 걷는 듯한 장쾌함도 느끼게 한다.
바다 쪽은 철옹성 같은 산세, 뭍 쪽은 아늑한 분지
"거제도는 한반도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에요. 산도 많아요. 그중 10대 명산으로 꼽히는 산 4개가 남북종단 코스에 속해 있어요."
약 15년 전 거제 남북종단 코스를 개척한 진선석(거제산악회 고문)씨의 자랑이 아니더라도 남북종단에 속한 산봉은 좋은 산들이다. 숲의 맑은 기운은 몸에 새로운 정기를 심어주고, 하늘의 밝은 빛은 마음을 환하게 해주었다.
↑ [월간산]1 망산은 조망뿐만 아니라 숲이 좋은 산이다. 소사나무와 참나무가 숲을 이룬 호젓한 능선 길. 2 북릉 상의 바위지대에서 바라본 망산 정상 일원. |
명사해수욕장에서 능선을 올라붙을 때에는 숲만 울창하려니 했다. 하지만 한발 한발 올라서면서 망산은 변화무쌍한 산세와 일망무제의 조망으로 가슴 벅차게 했다. 능선길을 20분쯤 오르자 숲이 벗겨지고 망대가 나타나더니 오늘 주파해야 할 가라산~노자산 산줄기가 눈에 들어오고, 대포에서 금포와 명사를 거쳐 저구 포구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아름답게 바라보인다. 날이 너무도 맑았다. 먼 바다의 섬도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왔다.
"이순신 장군이 여기서 작전 명령을 내렸을 것 같은데. 저게 한산도잖아. 그런데 오늘 저 노자산까지 가야 한단 말이야? 끔찍하다 끔찍해-."
"봄철 진달래꽃이 피면 소나무와 어우러져 정말 멋있다"는 진선석씨 말에 감탄스런 표정을 짓던 황원선씨는"내년 봄 꼭 다시 와야겠다"고 맞장구를 치더니 오늘 노자산까지 가야 한다는 말에 표정이 어두워진다.
두 번째 조망대를 지나자 바위 구간이 나온다. 진선석씨는 스릴 넘치는 바윗길이었으나 간간이 실족사고가 일어나자 데크를 설치하게 되었다고 알려준다. 바윗길을 지나고 소사나무숲을 벗어나자 말 그대로 망대나 다름없는 망산 정상이다. 쌍봉을 이룬 정상부 북봉이 더 높아 보이지만 북봉에는 산불감시초소가 터줏대감인 양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남봉에 정상 표석이 서 있다.
"고려나 조선 때에는 왜구들의 배를 감시하던 곳이었는데, 광복 이후에는 물고기떼를 살피기 위해 주민들이 올라왔던 곳이래요. 바닷물이 워낙 맑아 여기서도 숭어 떼가 움직이는 게 잘 보인답니다."
↑ [월간산]3 망산 정상.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풍광뿐만 아니라 거제 내륙의 산봉도 잘 보이는 곳이다. |
남쪽 발아래 '무지개마을' 홍포(虹浦) 해안은 정말 맑았다. 379m 높이의 망산 정상에서도 바닥이 보일 정도다. 그 맑은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많이 떠올라 있었다. 섬은 바다에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듯하다. 어떤 섬은 작은 꿈을 싣고 먼 바다로 향하는 새끼 고래요 또 어떤 섬은 희망 실은 엄마 고래였다.
홍포 갈림목(홍포 0.6km, 명사 1.9km, 저구삼거리 3.9km)을 지나자 망산은 묘한 산세를 보여준다. 바다 쪽으로는 철옹성처럼 벌떡 솟구쳐 있고, 반대쪽으로는 산줄기가 원형을 이루며 아늑한 분지를 조성해 놓았다. 이어 내봉산(315m)에 다가서는 사이 대포 앞바다의 장사도(長蛇島)는 모습을 감추고 대신 옛날 왜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가 서 있던 천장산(279.5m)이 보이고 그 좌측 뒤편으로 해금강 해안단애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런 풍광을 좇아온 것인지 북에서 불어대던 바람은 한풀 꺾이고 대신 동풍이 불어댄다.
내봉산 산정에서 조망을 즐기다가 여차 갈림목(여차 0.5km, 저구삼거리 2.2km)으로 내려서는 사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계절은 이미 늦가을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오르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산길은 한층 넓어지고 부드러워진다. 길바닥에 노란색 낙엽이 두터이 깔려 오색 융단을 밟는 기분이고 그러다 오르막에 접어들자 소나무 갈비 푹신한 산길이 대신한다.
각지미 바위지대에 닿자 다대포가 그림처럼 나타난다. 진선석씨는 날씨가 맑을 때에는 대마도까지도 바라보이는 조망대라 일러준다.
"오전 내내 걸었는데 이제 망산 하나 넘었단 말이야! 아무래도 안 되겠지? 다대포구에 가서 회나 한 접시 하지?"
↑ [월간산]4 망산과 내봉산 사이의 소나무쉼터. |
오전 7시40분 명사해수욕장을 출발해 2시간 반이면 끝내리라 예상했던 망산~내봉산 종주산행이 4시간 가까이 걸리는 바람에 도로가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저구삼거리 작은다대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20분. 평소 같으면 이미 하루 산행을 마친 셈인데 거제 최고봉 가라산을 오르고 또 노자산까지 가야 한다는 게 너무도 아득하다 싶었는지 배병달씨는 다대포 생선회로 일행을 유혹한다. 그러자 황원선씨는 길가 옹벽에 붙어 있는 '족발 배달' 안내판을 가리키며 "족발에 소주 한 잔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부추긴다.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Go!'다.
최고의 조망 보여주는 거제 최고봉 가라산
거제 최고봉인 가라산은 망산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한 숲과 좁고 부드러운 산길. 탐승객이 많아 길이 많이 파헤쳐지고 곳곳에 인공시설물이 들어선 망산이 전형적인 섬산이라면 가라산은 강원도 심산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잿빛 소사나무는 제멋대로 자란 게 오히려 자연미 넘치고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바람은 묘하게 뻗은 소사나무 사이를 빠져나가면서 묘한 소리를 내고, 하늘에서 까마귀가 울어대자 분위기는 한결 오묘해진다.
된비알을 올려치는 사이 등 뒤로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망산에서 내봉산은 높이답지 않게 넓은 품으로 가라산을 껴안을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 그 좌우로 명사해안과 다대포구가 아름답게 포진해 있는가 하면 망산 뒤로 매물도를 위시해 많은 섬들이 조각배처럼 떠 있는 한려해상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숯가마 터가 있었다 해요. 산성도 있어요. 다대산성이라고 고려 때 산성으로 알려져 있어요."
된비알을 올려치자 숲에 묻힌 산성이 눈에 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성을 살피면서 줄자로 길이를 재고 있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우리를 힐끗 쳐다본다. 문화재 복원을 위해 조사 중이라는 이들 말에 따르면 다대산성은 아직까지 제대로 고증된 바가 없는 상태다.
↑ [월간산]1 가라산 북릉에서 바라본 선자산. 내륙의 고산 못지않게 장쾌한 산줄기로 이어져 있다. |
다대산성을 지나 완경사를 이루던 산길은 가팔라지면서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조망대가 맞아준다. 망산이 아기자기하면서도 가벼운 산수를 그린 풍경화 같다면 가라산은 선 굵고 묵직한 수묵화 같은 풍광이다. 그러다 가라산은 가을햇살이 더해지고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반짝이는 억새에 연보랏빛 쑥부쟁이와 하얀 구절초 꽃이 덧칠해지자 컬러풀한 산수화로 변해 버린다.
조망대를 지나 널찍한 가라산 정상에 오르자 노자산 뒤로 선자산과 계룡산, 그리고 거제지맥의 북병산(465.4m)과 옥녀봉(554.7m)도 눈에 들어온다. 가라산은 역시 거제 최고봉답게 최고의 조망을 보여 주었다. 내륙의 산봉뿐만 아니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섬들도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흰 꼬리를 달고 바다 위를 종횡무진하는 고기잡이배까지도 빤히 바라보였다.
가라산 산정에서도 노자산은 멀게만 느껴진다. 속도를 더 낸다. 학동을 누르고 있는 매 형상이라는 매바위(490m)를 지나자 배병달씨와 황원선씨는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 걷는 것은 무리다. 군사훈련시키는 거 아니냐"며 툴툴댄다. 오후 3시20분, 산행을 시작한 지 8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힘든 것도 당연. 그래도 매바위에 올라서자 노자산은 지척이다 싶다.
오후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매바위 능선은 그림자를 서서히 서쪽으로 늘어뜨린다. 이 모습이 바로 매가 앞발을 세우고 학동 마을을 움켜쥐려 하는 형세로 느껴지는가 보다. 여인의 젖무덤처럼 생겼다 하여 젖봉이라고도 불리는 마늘봉을 지나면서 노자산자락에 접어든다. 이제 노자산 3층 조망대가 빤히 바라보이고, 내일 걸어야 할 선자산과 계룡산도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565m 노자산에서 30m 높이… 동부저수지로 떨어져
아침나절 서쪽으로 늘어뜨리던 그림자는 정오를 지나면서 반대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이제 동쪽 해안가까지 다가선다. 숲속에서 쓰르라미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갈바람은 해떨어지면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래도 해질녘 숲의 정기는 한층 맑아진다. 온종일 하늘에서 받은 빛과 기운을 숙성시켜 더욱 깊은 정기로 바꿔놓고 숲을 가르는 산객(山客)의 몸에 끼얹어 준다.
↑ [월간산]2 고려 때 석성으로 추정되는 다대산성. |
벼늘바위를 우회하자 갈림목(학동고개 2.2km, 저구삼거리 6.9km, 노자산 1.4km). 이제 오늘 묵을 휴양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자 다리에 힘이 실리고 머리가 맑아진다.
잰걸음으로 부지런히 걸어 노자산을 800m 앞둔 무명봉에 올라앉은 전망대에 올라선다. 진선석씨가 일출과 일몰 명당이라 극찬하듯이 노자산 전망대는 최고의 조망대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기운을 잃은 해가 바다에 떨어지기 전 휴양림으로 내려가야 하는 처지. 그래도 숲 울창한 산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 오늘도 서둘러야 해요. 늦장부리다가는 해떨어지기 전에 못 내려갈 거예요."
거제 남북종단 산행 둘쨋날도 서둘러 출발했다. 관리사무소 뒤편으로 난 제2등산로는 된비알 지능선길. 그렇지 않아도 어제 산행으로 다리가 뻑적지근한 상태인데 시작부터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니 다리가 더욱 뻣뻣해진다. 그래도 쉼 없이 올려붙여 35분 만에 정상에 올라선다.
짙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골마다 산안개가 자욱한 거제의 산야는 어제와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제는 화려한 수채화였다면 오늘은 수묵화다. 동으로 학동해안은 남해에서 뭍으로 몰려오는 모든 기운을 받아들일 듯 품을 넓게 펼치고 있고, 그 오른쪽 해금강은 멀리서도 멋들어지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저기 구름 밑으로 띠를 이룬 섬이 보이죠? 저게 대마도예요. 부산도 저기 보이네요. 날씨가 좋으면 정말 조망이 대단한 곳이에요."
↑ [월간산]3 가라산 전위봉에 세워진 전망대. 멋진 조망대이자 훌륭한 쉼터다. 4 거제지맥 최고봉인 가라산 정상. |
쏟아지듯 가파른 내리막을 따르다 산길이 완만해질 즈음 사각 쉼터에서 두런거리는 한 쌍의 부부가 보인다. 혜양사에서 올라온 이들은 숲속의 맑은 공기 덕분인지 환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리 들어가는 게 낫나, 아니 저리 가죠."
쉼터에서 혜양사로 내려서는 산길은 탄탄대로처럼 나 있으나 우리의 점심식사 예정지인 동부저수지로 이어지는 산길은 잡목투성이다. 진선석씨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조선 직원들을 인솔하며 극기 코스 삼아 다니느라 길이 잘 나 있었는데 이후 다니는 사람이 없었는지 잡목이 많이 우거졌다"며 가시덩굴 속으로 들어선다.
숲을 가로지르자 수풀 우거진 헬기장이 나타나고 이어 희미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간간이 보이는 산악회 리본을 벗삼아 오르내리막을 반복하다가 한없이 떨어지는 능선길을 따르자 동부저수지 댐으로 내려선다.
"아니 이게 뭐야! 해발 25m잖아. 아예 바닷가까지 내려왔네."
↑ [월간산] |
"오전 8시30분 노자산 정상을 출발해 3시간 넘게 능선을 오르내린 결과가 해발 25m 높이 동부저수지였다. 진선석씨는 동부저수지 수로 밑으로 흐르는 개울에 참게에서부터 장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유 어종이 살고 있어 좋은 낚시터라 일러주지만 아직 걸어야 할 능선이 한나절 남아 있고,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가야 할 취재팀에게는 의미 있는 얘기일 수가 없다.
맥빠진 표정을 지으며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기인이 나타나 분위기를 반전시켜준다. 엊저녁 고현읍에서 만난 전제룡(거제산악회 부회장)씨가 가져온 박스를 여는 순간 보리밥에 여러 야채가 입맛을 다시게 하고 걸쭉한 막걸리까지 곁들여지니 일행 모두 함박웃음을 짓는다.
성찬을 마치자마자 도로를 가로질러 선자산 자락으로 접어든다. 오전 내내 내리막, 이제는 오르막이다. 도로를 출발한 지 50분 만에 350m 고도를 높여 쉼터 갈림목(자연예술랜드 1.4km, 산양 1.9km)을 지나자 부드러운 능선길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오전 내내 칙칙하던 분위기는 먹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쬐면서 소사나무 숲은 환해진다. 하늘의 빛은 소사나무 등 활엽수 나뭇가지 사이로 파고들면서 숲에 하늘의 맑은 정기를 심어주고 우리 몸을 가볍게 해준다. 그 기운에 힘입고 올라간다.
임도 갈림목(산촌마을 2.5km, 산양마을 2km, 선자산 1km, 자연예술랜드 2km)을 지나면서 다시 된비알로 바뀐다. 또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표고 200m를 올려치자 선자산 정상이다. 남으로는 어제 오른 가라산과 오늘 아침 오른 선자산은 하나의 산괴를 이룬 채 웅대하게 솟아 있고, 북으로는 계룡산이 용 등줄기 같은 산세를 과시하며 우뚝 솟구쳐 있다.
능선은 온통 가을이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하얀색 꽃 보라색 꽃을 활짝 피운 채 가을 햇살과 가을바람을 즐기고 있고, 풀잎은 힘을 잃어가면서도 애틋한 아름다움으로 길손을 맞아준다. 계룡산으로 향하는 사이 고현읍이 점점 다가온다. 빌딩숲을 이룬 고현읍은 오후 햇살에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한려해상과 어우러져 멋진 도시 풍광을 보여준다.
↑ [월간산]1 노자산에서 바라본 선자산과 계룡산(왼쪽). 산릉이 중첩되면서 500m대 답지 않게 웅장한 산세를 보여준다. 2 커다란 빗돌이 서 있는 노자산 정상. 남해 조망이 멋진 봉우리다. |
"어라~, 얘가 미쳤나봐!"
제법 거친 바위 구간을 거치고 고현읍 주민들이 애용하는 산길이라는 상문동 코스 갈림목(상문동 2km)을 지나자 억새가 반짝이며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더니 계절을 잊은 건지 착각한 건지 철쭉이 연분홍 꽃을 활짝 피워놓고 있다. 가을 햇살은 철쭉을 헷갈리게 하는가보다.
어둠 밀려오자 바다엔 섬이 솟구치고… 뭍엔 화려한 불꽃 축제 열려
가을의 절정은 고자산치 일원에 벌어져 있었다. 막 팬 억새는 가을 햇살을 구가하면서 반짝이고 있었다. 고자산치는 억새 우는 소리만큼이나 구슬픈 오누이의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어느 여름날 오누이가 비를 맞으며 고개에 올랐는데, 오빠는 비에 젖은 동생을 보면서 은근히 음탕한 감정을 품었다. 그러다 평상심을 되찾은 오빠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자신을 자책하며 동생을 내려 보낸 뒤 칼로 자신의 고환을 찔렀다. 먼저 내려가던 여동생이 한참 기다렸는데도 오빠가 오지 않자 다시 고개로 올라섰다. 그곳에는 오빠가 이미 피를 많이 흘린 채 숨져 있었고, 충격을 받은 여동생은 울부짖으며 고개를 내려갔다고 해서 '울음이재'라고도 부른다는 얘기다.
"에이, 한 시간 반에 어떻게 가요! 우린 두 시간 반이나 걸렸는데-. 숨 안 쉬고 걸으면 몰라도-."
고자산치에서 잠시 쉬고 있는 사이 정상에서 한 쌍의 연인이 내려섰다. 이들은 정상을 넘어 고현 번화가까지 한 시간 반이면 내려설 수 있으리라는 진선석씨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선자산 방향으로 걸어갔다.
↑ [월간산]1 오후 햇살에 신비스런 경치를 자아내는 계룡산. |
그렇게 말할 만했다. 거제포로수용소 통신대 자리까지 올려치는 데만 해도 45분이 걸렸고, 통신대에서 능선 사면 대나무밭 안에 위치한 샘을 거쳐 정상에 올라섰을 때에는 오후 5시40분. 이미 한 시간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계룡산정에서 기대했던 일몰 풍광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틀 전 저구리 앞바다로 떨어지는 둥근 해와 달리 오늘은 해무와 구름에 힘을 잃고 힘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해가 사 라지자마자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오고 그 어두운 바다에서는 섬들이 산봉처럼 하나하나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반대쪽은 정반대의 불꽃 축제가 열렸다. 고현읍내는 시내 불빛이 멋들어진 야경을 연출하고 바다 건너 멀리 부산 앞바다의 불빛도 반짝였다. 우리는 그 모습에 하산할 생각을 잊어버리고 어둠 속에 잠겨 버렸다.
장사도 '까멜리아'
원시의 숲에 인공미 겸비한 바다의 공원
거제도 남서쪽 해안인 대포포구에서 3km 떨어진 장사도는 지난 1월 7일 개장 이후 지난 10월 11일에 이르기까지 36만5,000명이 넘는 탐방객이 찾아들었을 만큼 인기를 누리는 관광명소다.
누에를 닮아 잠사도라 불리기도 하고 긴 뱀을 닮았다고 해서 '진뱀이섬'이라고도 불렸던 장사도의 면적은 39만㎡, 폭 400m, 길이는 1.9km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장사도는 동백나무(10만 그루), 구실잣밤나무(1만 그루), 후박나무(1만 그루) 등 난대림 군락에 야생화가 피어 사시사철 푸른 숲을 볼 수 있고, 천연기념물 팔색조와 풍란 석란 또한 자랑거리다.
↑ [월간산]2 선자산 정상. 동부 산양 마을, 거제자연예술랜드, 구천댐, 계룡산 길이 나뉘는 지점이다. 3 계룡산 정상 남쪽 안부에 남아 있는 거제포로수용소 통신대 막사 잔해. |
1986년 자연적으로 주민이 소거된 장사도는 1900년대 초 주민들이 입도한 이후 한때 14채의 민가와 8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장사도분교와 작은 교회가 있던 유인도였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이 섬에 부임한 염소 선생님의 이야기는 '낙도의 메아리'라는 타이틀로 영화화하기도 했다.
도비와 시비 39억 원을 포함해 250억 원을 투자해 조성한 장사도 까멜리아에는 폐교된 학교가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고, 분재원, 무지개다리, 장사도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놓은 필름프로미네이드, 동백터널길, 야외공연장(조각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달팽이 전망대와 승리전망대, 다도전망대 등은 장사도 일원뿐만 아니라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바다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조망대다. 4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1년 폐교된 죽도국교 장사도분교는 교실 한 채가 현재 영상물 상영실로 이용되고 좁은 운동장은 100여 그루의 분재가 자리 잡고 있지만 중년에 접어든 이라면 누구든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곳이다.
선착장~장사도분교~무지개다리~달팽이전망대~필름프로미네이드~온실~동백숲터널~야외공연장~부엉이전망대~수생식물원~야외 갤러리~맨발공원~허브가든~출구선착장으로 이어지는 장사도관광은 2시간만 가능하다.
교통편(지역번호 055)
장사도는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21.5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통영의 섬(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제도에서 남쪽으로 약 3km 떨어져 거제도에서 가는 편이 수월하다. 통영에서는 뱃길로 45분, 거제에서는 10분 남짓 걸린다. 유람선 요금은 왕복 기준으로 통영항 2만1,000원, 가배항 1만6,000원, 통영항에서는 하루 40여 차례, 가배·저구·대포항에서는 각각 하루 4?5차례 출항한다. 섬 입장료는 어른 기준 8,500원.
↑ [월간산]4 이틀 동안 30km가 넘는 거제남북종단을 끝내고 계룡산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축하라도 해주려는 듯 하늘은 저녁햇살과 새털구름으로 장식하면서 반겨주었다. |
문의
거제 가배항 장사도유람선(637-8282), 장사도해운(637-0070), 저구항 남부유람선(632-4500), 대포항 대포크루즈(633-9401), 통영유람선(645-2307).
[산행 길잡이]
거제자연휴양림 휴양림에서 하루산행 끊는 게 바람직
노자산~동부저수지 구간 빼면 가벼운 1박2일 산행
망산에서 계룡산까지 잇는 거제 남북종주 코스는 거제의 10대 명산 중 4개의 산봉이 솟아 있는 명품 종주코스다. 하지만 35km 가까이 되는 긴 능선길이기 때문에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서야 한다.
망산 산행은 명사 포구에서 시작한다. 명사 마을 입구에서 도로를 따라 대포 방향으로 향하다 첫 번째 고갯마루 직전 한려해상국립공원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다. 저구 삼거리에서 가라산으로 오르려면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50m쯤 올라가야 한다 도로변 입구에 '가라산 정상 2.7km'라는 팻말이 서 있다. 입구로 들어선 이후 노자산 전망대까지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 [월간산] |
노자산에서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기점은 세 곳이다. 매바위 북쪽 갈림목에서 거제지맥을 타고 학동고개로 향하다 첫 번째 안부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휴양림 입구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정상을 800m 남겨놓은 전망대(휴양림 1.1km)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도 거제지맥으로 올라붙는다. 전망대에서 노자산 정상으로 향하다가 첫 번째 갈림목에서 오른쪽 길을 따르면 휴양림 관리임도로 이어지고, 노자산 정상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르면 단독 산막을 거쳐 관리사무소 앞으로 내려선다.
노자산 정상에서 혜양사 갈림목 쉼터(혜양사 2km)까지 약 30분 거리는 길이 잘 나 있으나 이후로는 잡목을 헤치며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쉼터를 지나자마자 나뭇가지에 리본이 많이 매달려 있는 지점에서 잡목을 헤치고 들어서야 한다. 이후 능선 등날이 펑퍼짐해지면서 간혹 길이 헷갈리기는 하지만 날등을 벗어나지 않으면 3단 조망바위까지 무난히 갈 수 있다. 이후 동부저수지를 내려다보면서 저수지 둑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굳이 종주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노자산 정상에서 동부저수지 구간은 빼고, 휴양림에서 동부저수지 거제자연예술랜드까지 차량으로 이동한 다음 선자산~계룡산 능선 종주산행에 나선다면 좀더 수월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다.
계룡산에서 하산로는 다양하다. 고자산치에서 임도를 따라 오른쪽(동쪽) 방향으로 가면 용산마을로 내려서고, 통신대에서 오른쪽 길을 따르면 백병원(1.7km)으로 내려서고, 의상대 직전 갈림목(정상 0.5km, 고자산치 1.5km) 오른쪽 길은 샘과 계룡사를 거쳐 거제시청(2.4km)으로 내려선다. 정상에서는 북쪽 전망대를 거쳐 북동릉을 타고 공설운동장 주차장으로 내려선다(2.7km).
능선 상에서 식수를 구할 만한 곳은 계룡산 의상대 아래 샘밖에 없다. 따라서 식수는 산행 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대중교통
서울→고현
서초동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06:40~20:00) 26회 30~40분 간격 운행. 심야 22:00, 20:40, 23:20, 24:00. 4시간20분. 우등고속 3만2,800원, 심야 3만6,100원. 문의 02-521-8550.
대전→고현복합시외터미널 1일(08:00, 09:30, 11:00, 12:30 14:00, 15:30 17:00 18:40 20:30) 9회 우등고속(12:00, 22:10 일반고속) 운행. 우등 2시간40분, 2만1,100원. 일반 3시간30분, 1만8,700원. 문의 1577-2259.
부산→고현서부(사상)터미널에서 거가대교 경유 직행 1일(06:00~22:00) 20분 간격 운행. 1시간20분, 6,700원. 심야 23:00, 7,400원. 문의 1577-8301.
진주→고현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06:50~20:30) 50분 간격 운행. 1시간15분 6,500원. 문의 1688-0841.
고현→명사(대포, 홍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53번, 53-1번 시내버스 이용. 1일 3회(07:25, 13:55, 17:35) 운행(명사→고현 09:25, 16:00, 19:35). 요금 1,100원. 문의 거제시내버스정보시스템 055-639-4534 http://bis.geoje.go.kr
고현→거제예술랜드(거제자연휴양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5회(05:55, 07:50, 09:35, 11:35, 15:35) 운행. 요금 1,100원.
↑ [월간산] |
숙박(지역번호 055)
노자산 해발 150~200m대의 울창한 숲속에 조성된 거제자연휴양림은 주말에는 예약이 쉽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숲속의 집·산림문화휴양관 이용료(성수기/비수기)는 5인 이하(24.3㎡) 5만 원/3만5,000원, 10인 이하(50.5㎡) 10만 원/7만 원. 야영데크 5,000원, 야영장 3,000원. 입장료 1,000원(어른), 주차료 2,000원(중소형). 예약은 홈페이지(www.geojehuyang.or.kr)를 통해 받는다. 주소 경남 거제시 동부면 거제중앙로 325번지, 문의 639-8115~6.
명사해수욕장과 대포마을 일원에는 전망과 시설이 좋은 펜션이 여럿 있다. 명사포구 모래알펜션(010-4159-1613), 놀러와펜션(010-3552-9582), 대포포구 바다클래식(010-8678-9223), 어깨동무펜텔(대형 634-0079).
맛집(지역번호 055)
고현시장 어시장에서 싱싱한 생선을 비교적 저렴한 값에 판매해 회를 쳐준다. 부근 식당에서 1인당 3,000원씩 내면 야채와 초장·간장을 내준다.
고현동 황토마당은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보리밥, 해물찜 전문식당이다. 보리밥에 10여 가지 나물을 얹어 비벼 먹는 맛이 일품. 가재미 구이도 곁들여 나온다. 값 7,000원. 아구찜(소 2만 원, 중 2만5,000원, 대 3만 원), 해물찜(〃), 가오리찜·무침(각 2만 원)도 인기 있다. 문의 637-5953.
멍게 덮밥은 거제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다.
여러 집 중 백만석이 가장 인기 있는 멍게비빔밥 전문식당이다. 이 식당에서는 고등어구이를 비롯한 맛깔스런 반찬들과 더불어 싱싱한 생선으로 만든 지리(맑은 탕)도 곁들여 나온다. 지리의 내용물은 계절에 따라 우럭, 도다리, 물메기, 노래미, 대구 등으로 바뀐다. 문의 638-3300.
조선일보 & www.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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