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회의 단비칼럼] 과거 간첩조작 사건들을 통해 본 현재…국정원과 검찰의 계속된 불법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아픈 과거를 잊지 않으면 사람은 견디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오로지 시간이, 망각이 치유해 줄 수 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그러나 중요한 역사를 잊으면 사람은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한다. 같은 잘못, 같은 범죄를 계속 저지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단의 기억으로 역사를 정리하고 그 역사를 후배와 후손들에게 전하는 이유는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지금 이 땅에서 국가권력이 간첩을 조작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검찰과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한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이 센 두 조직이 사회적 약자인 탈북자를 상대로 벌인 범죄행각이다.
믿기 힘든 현실이고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 눈앞의 현실이다.
간첩조작·증거조작이 반복되는 이유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감히 증거를 조작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간첩일 것 같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처벌하고 박멸해야 한다는 비뚤어진 반공의식,
이번 사건을 잘 처리하면 출세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욕심, 사람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무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1960년대와 1980년대까지 이어온 간첩조작 사건, 증거조작사건을 떠올린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검찰이 당시에 있었던 간첩조작사건, 증거조작 사건을 기소기관으로서 막고 증거조작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과거의 불행한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때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사건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과거를 청산했다면 이번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이 일본 현정부와 어쩌면 이렇게 비슷한지 기가 막힌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인간의 이성으로 막을 수 있다.
대표적인 증거조작 사례를 보면서 역사의 무게를 느껴본다.
‘태영호’의 진실: ‘월선 않았다’는 해군 확인서 제출하지 않은 검사
태영호 선주와 선원들은 1968년 7월 3일경 경기도 웅진군 연평도 근해 해상에서 병치잡이를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나포, 억류되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인 10월 31일 그들은 연평도 해상에서 풀려나 남한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경찰과 검찰의 가혹한 수사였다.
이들은 인천경찰서에서 3일, 여수경찰서에서 34일 불법 구금되었다가 순천지청의 수사지휘로 석방되었다.
그런데 다시 부안경찰서에서 30여일 동안 불법감금되어 수사를 받았다.
그리고 순천지청으로부터 사건을 이송받은 정읍지청은 이들을 “반국가단체인 북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했다”는 혐의로
기소를 했다. 이들은 모두 징역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문제는 정읍지청이 기소를 하기 전에 이미 해군본부에 태영호의 월선여부를 질의했다는 것이다.
정읍지청의 담당 검사는 해군본부의 회신을 기다리지도 않고 태영호 선주와 선원들을 기소해 버렸다.
그리고 11일 후 해군본부의 회신이 도착했다.
그 내용은 어로저지선 남방 1.5마일 지점에서 어선 1척이 북한 경비정에 의하여 피납된 사실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태영호는 월선하지 않았다는 것이 공식 확인되었다. 여기에서 상식적인 사람은 이들 선원들이 마땅히 무죄로 석방되어야 하고
선원들에 대한 불법구금과 가혹행위에 대해서는 국가가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증거는 기록목록에 기재되지도 않았고 법정에 제출되지도 않았다. 검사는 고의로 이 증거를 무시했다.
비록 새로운 증거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고의적으로 누락함으로써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이런 일은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된다. 인류의 위대한 모든 스승들이 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검사의 윤리, 공무원의 윤리, 이런 것까지 갈 필요가 없다.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을 뻔히 알면서도 처벌하는 것은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 태영호 사건은 재심을 통하여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덕호’간첩조작사건의 진실: 불법구금·고문으로 이루어진 허위자백
1969년 3월 28일 주문진에 사는 대덕호 선원 최만춘은 부인과 함께 전북도경에 연행되었다. 구속영장이 없는 불법구금이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무려 195일이 지난 10월 7일. 그 동안 이들은 잠 안재우기, 각목 구타 등의 고문, 가혹행위를 당했다.
그 과정에서 7명의 선원이 더 연행되어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했다.
이들은 무장간첩의 안내원으로 수사를 받았지만 관련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전북도경은 6년 전에 발생한 납북사실을 확인하고 간첩혐의로 수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결국 탈출, 잠입,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 불고지죄 등으로 최고 징역 10년, 최소 징역 1년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불법구금과 고문, 가혹행위는 범죄행위다. 범죄행위로 인하여 얻은 증거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상식적인 판단이다.
정의를 집행하는 국가기관이 범죄를 저지르면 수사와 재판의 도덕성은 깨어진다. 범죄자는 범죄자를 처벌할 수 없다.
하물며 범죄자가 무고한 사람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겠는가?
검사는 경찰의 위법행위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전혀 그러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들 선원들은 전주지방검찰청에서 검사도 구타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에서 고문을 당한 사람이 검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 리 없다. 검사가 경찰보다 더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사는 이를 무시했다.
당시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사건에서 불법구금과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공지의 사실이다.
더구나 이 사건에서는 무려 195일간의 불법구금이 있었다.
‘불법 보존의 법칙’: 불법은 새로운 에너지 투입해야 없앨 수 있다
한번 발생한 불법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이를 나는 ‘불법 보존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자연계의 유명한 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같이 한번 발생한 불법은 없어질 수가 없다.
의식적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투입해야만 없앨 수 있을 뿐이다.
검사는 불법구금과 고문의 의혹이 있으면 이를 수사해야 한다. 경찰이나 국정원의 위법행위는 자연적으로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검사나 다른 국가기관이 나서서 수사를 하고 단죄를 해야 없앨 수 있다.
그런데 검사는 이를 숨기고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기소를 하고 이들을 처벌해 버렸다.
증거가 고문으로 조작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작한 증거를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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