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와 메르스…똑같은 공무원, 다른 건 지도자
이관후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2015.06.11
화재 경보가 울린다고 별 일이 있겠습니까. 아마 누군가 실수로 눌렀거나, 고장 확인을 위해 눌러 본 것일 테니 곧 꺼질 줄 알았지요.
장난도 유분수거니와 문제가 생겼으면 빨리 직원이 조치를 취해서 고쳐야지 이렇게 오랫동안 시끄럽게 경보가 울려대다니요.
지금 경보 울린 것 안 들리느냐?" 저는 되물었습니다. "잘 들린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 그랬다가 다시 한 번 큰 호통을 들었지요.
"무슨 일이냐니? 화재 경보가 울렸잖아. 그럼 뭘 해야 하지?"
잔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렇게 방 밖으로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눌렀다가 또 한번 혼쭐이 났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이제 다들 알아 채셨을 겁니다. 저는 경비원과 함께 10층부터 계단을 걸어서 내려왔습니다.
몇몇은 머리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빙빙 돌렸습니다. '정신이 어떻게 된 것 같은 저 학생은 도대체 어느 나라 애냐?'는 말도 들렸습니다.
이것이 제가 태어나서 처음 제대로 받아 본, 화재경보 훈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화재경보 훈련은 한 달에 두 번씩, 불시에 계속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훈련이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모든 학교에서 한 달에 두 번 불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국이라면 지체 없이 모든 학생이 빠른 걸음으로 정해진 가까운 비상구를 향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누구의 명령이나 지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을 인솔해 5층에서 1층으로 계단을 통해 내려온 후 정해진 장소로 대피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보가 실제 상황이었다면 여러분과 나는 이미 죽었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 화재 경보가 울렸습니다. 이번에도 아무도 화재 경보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망설였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저는 즉시 지하철역 밖으로 대피 했어야 합니다.
만약 연기를 발견하면 방독면을 착용하고, 소화기도 휴대했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조금 더 책임감이 있었더라면,
다른 사람들이 지하철에 타는 것을 제지하고 대피를 유도했어야 할 것입니다.
한가하게 운동회를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운동회를 하려다가 철회했다는 거짓말을 직원들에게 강요했다가,
결국 모든 것이 들통나자 "작년에 세월호 때문에 못했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보자 했는데 딱 그날 환자가 나온 것"이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응급실에 대한 폐쇄 결정을 유보했습니다. 병원의 손실에 대한 배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는 겁니다.
결국 인하대병원처럼 스스로 결단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한 곳이 있는 반면, 서울삼성병원처럼 끝까지 숨기다가 이제는 메르스의 온상이
된 곳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실은 사태가 심각하고 우리부처가 잘 못 인식했다고 보고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축소 보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청와대와 대통령의 '정부가'로 시작되는 '유체이탈' 화법은 바로 이런 억울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공무원 탓을 할 수는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부 공무원들은
대통령을 앞에 두고도 예산 때문에 방재를 할 수 없다고 버티다가 대통령의 약속을 받고서야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현재 질병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는 분이 과거 정부에서 사스를 훌륭하게 대처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 역시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공무원은 그런 존재입니다. 책임은 그런 공무원들을 통제해야 할 임명직 공무원과 정치인에게 있습니다.
메르스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않던 청와대는 국민들에게 안심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청와대에는 열 감지기를 설치했습니다.
어제 열린 새누리당 대책회의에서는 메르스라는 병명이 공포스러우니, 보다 유화적인 다른 말로 바꾸자는 말도 나왔습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지도자는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영국 여왕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약용은 요순과 같은 성왕조차도 단지 '남면(南面)'하는 것만으로는 나라를 다스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1년, 데자뷰와 쌍둥이
그리고 우리가 본 것은 데자뷰였습니다.
세월호와 메르스를 대하는 태도에서 해양경찰과 질병관리본부, 해양수산부와 보건복지부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아마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방만이 안전이고, 사회의 안위가 신고와 색출에 달려있다는 대통령의 신념이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이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 쓰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정부의 남은 기간 동안 우리는 스스로 사는 법, 각자를 지키는 법에 대해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면서 치러야 하는 대가입니다.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정치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회가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고 합니다만, 정치가 사회의 변화를 견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대피 훈련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미리 시간을 정해서 여러 번 안내방송을 하고, 정해진 순서대로 화재대피 훈련을 합니다.
그것이 나라를 안전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도자는 대형사고 이후에 공무원들의 사고와 근무방식을 점검하고, 모든 고층빌딩과 위험시설에서 실제로 불시에
그것이 실제로 나라를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화재 경보가 울릴 때 원칙대로 행동하면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상시적인 위험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바꾸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와 첫 화재 경보를 듣고도 학생들을 대피시키지 않은 그 날, 저는 수업시간에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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