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척결과 검찰개혁 위한 고비처 신설에 힘 모아야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으로 결정했다. 이로써 김영란법 시행에 장애물은 사라졌다. 부패청산, 청렴사회를 위한 큰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 권력형 비리를 뿌리 뽑는데 김영란법은 부족하다.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는 독립된 상설, 전문기관인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이하 고비처)가 필요하다. 고비처는 김영란법으로 시작된
반부패 투쟁을 이끄는 선봉장 역할을 한다.
김영란법은 민간인의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과 공직자의 금품수수를 규제한다. 모든 사람은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에게 인가, 허가, 채용, 승진, 심의, 의결, 포상, 입찰, 경매, 계약, 입학, 성적평가, 판정, 단속, 감사, 수사, 재판 등 공적 업무에 관해
부정청탁을 해서는 안 된다. 부정청탁은 대가에 관계없이 금지되고 처벌된다. 처벌범위는 광범위하지만 부정청탁이므로 기존에도
처벌되어 왔다. 큰 변화는 아니다.
김영란법은 나아가 공직자의 금품수수 자체를 규제한다. 공직자는 직무 관련 여부나 명목에 관계없이 같은 사람에게 1회에 100만원 이상,
매 회계연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을 수 없다. 이때는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필요 없다.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공직자의 금품 수수가 100만원 이상인 경우에는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에 관계없이 처벌된다.
그리고 직무수행, 사교, 의례,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 경조사비, 선물 등은 일정액 이상을 받으면 2배 이상 5배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진다. 현재 예상되는 금액은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이다. 이 이상의 금품제공은 금지되고 만일 초과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이 정도만 해도 공직사회는 크게 변할 것 같다. 접대와 금품제공, 향응, 청탁에서 벗어나 청렴한 공직사회로 성큼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더 큰 변화가 숨어 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를 넘어 언론인과 사립학교 임직원, 유치원 교사까지 대상으로 한다.
이 점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언론인과 사립학교 임직원 등이 공공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둘째, 이들의 청렴성이 확보되어야
한국 사회가 부패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이들을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바람직하다.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 부패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큰 걸음이다. 하지만 김영란법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를 뿌리 뽑기는 부족하다. 김영란법은 공직사회와 공공직역의 일반적인 부정부패를 단속하고
처벌할 뿐이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권력과 자본, 관료와 언론의 지배카르텔이 저지르는 대규모의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하지 않는다.
최근 우리 사회의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진경준 사태에서 보듯 사정기관, 검찰 최상층이 사상 초유의 거대 부패를
저질렀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우조선해양, 롯데, 넥슨같은 기업은 부정과 비리의 덩어리였다. 제3당, 국민의당 역시 부패에 연루되었다.
부패가 커지고 당당해지고 나아가 체계화, 제도화, 계급화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 김영란법은 불충분하다.
부정부패의 규모와 내용, 영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권력, 자본, 관료, 언론의 기득권 카르텔은 서로가 서로의 뒤를 봐주면서 이권을 챙기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보통의 부패방지시스템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김영란법이 상정하는 국민권익위원회나 감사원, 수사기관으로는 권력과 자본의 몸통을 건드릴 수 없다.
만일 기존의 시스템으로 부정부패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김영란법을 제정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권력과 자본, 관료와 언론의 카르텔에서 비롯되는 거대 권력형 부정부패의 처리는 권력에서 독립된 상설, 전문기관이 담당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다. 현재 고비처는 검찰개혁의 상징처럼 보인다. 물론 고비처는 검찰개혁의 주요 내용이다.
검찰권력을 분산하고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비처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비처는 원래 정경유착 등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기 위하여 구상되었다.
따라서 고비처는 부패척결과 검찰개혁을 위한 핵심적인 과제다. 검찰개혁과 더불어 부정부패 추방이라는 대의를 강조할 때 고비처의 필요성은
더 지지받을 것이다.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권력형 비리 척결과 검찰개혁을 담당하는 고비처 신설에 힘을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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