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사를 받고 온 이후 20여 일 동안 고인은 하루 한끼 식사에 하루종일 말없이 방안에서만 지냈다고 합니다.
유서에 씌여진 내용처럼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을 자신이 짊어지고 갈 '운명'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고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정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지옥같은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는 자책감과,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는 절망감, '남에게 짐이 될 수 밖에 없는' 여생을 도저히 더 지고 갈 수 없다는 암담함 속에서 고인이 다다른 결론은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고인을 그토록 고통에 빠뜨린 사람들에 대한 원망은 이미 마음 속에서 지워진 듯 보입니다.
박연차의 진술만을 토대로 지나치게 가혹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수사 과정에 드러난 사실들을 낱낱이 까발린 검찰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도 않은 가족들의 사생활이며 시시콜콜한 사실들을 매일같이 경쟁적으로 보도해 온 언론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자살하라고까지 폭언을 퍼붓고 끊임없이 독설과 조롱을 일삼았던 보수 논객들이나 언론의 사설에 대해서도, 그 모든 사람들의 뿌리깊은 복수심과 증오에 대해서도, 고인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용서의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새벽 바람을 맞으며 부엉이바위에 서 있는 동안 고인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오갔을까요?
밤을 하얗게 세우며 컴퓨터 앞에 앉아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바위 위에 선 고인이 경호원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였다고 합니다.
그 시간에 길을 지나가던 사람은 새벽 밭일을 나온 농부였거나, 건강을 위해 등산을 나온 평범한 주민이었겠지요. 아니면 가족을 위해 절에 새벽기도하러 가는 아낙네였을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결심한 마지막 순간까지 고인의 눈에 보인 것은 나무도, 구름도, 새도, 바람도 아닌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고인의 홈페이지 제목처럼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일생을 바쳐 온 고인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사람'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날리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아마 고인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염원을 가슴 깊이 품었을 것입니다.
고인의 유언대로 시신은 '화장'을 해서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고' 안장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고인의 시신과 함께 고인이 우리에게 남긴 "사람"에 대한 사랑과 비전을 함께 우리 가슴 속에 묻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의 영혼이 사랑과 평화 속에 저 하늘의 별로 승천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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