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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대통령 도주 도운 권한대행, 그의 한 마디

by 서랑 (瑞郞) 2017. 2. 25.

그는 4·19 때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갔어야 한다. 그는 12년간의 국정농단으로 국민의 삶을 파탄에 빠뜨렸다.

정권 연장을 위해 발췌개헌·사사오입 개헌이라 불리는 불법개헌 혹은 헌정농단까지 저질렀다.

이를 통해 그는 최측근인 박마리아·이기붕 부부의 부정축재를 도왔다. 이 부부의 아들인 이강석은 덕분에 정유라 못지않은 호사를 누리고 살았다.


1960년에는 노골적인 3·15 부정선거로 국민을 우롱하고 국민의 뜻을 왜곡시켰다. 그리고 그 해에 벌어진 4·19 혁명 때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186명의 국민을 죽이고 6000명이 넘는 국민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탱크까지 동원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촛불'을 진압하려 했던 것이다.


참으로, 그가 지은 죄는 한둘이 아니었다. 하늘 꼭대기를 향해 쌓아 올라갔다는 바벨탑처럼, 그의 죄악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저항 시인 김수영은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는 시에서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고 호소했다. 

시인을 포함한 국민들의 분노가 이 정도였으니, 그는 4·19 때 감옥에 가야 했고 차디찬 감옥에서 말년을 보냈어야 했다.


이승만이 하야한 지 이틀 뒤인 4월 27일 외무장관 자격으로 과도정부 수반이 된 허정은 그 같은 국민의 심경을 받들었어야 했다.

'이승만의 제자 겸 신하'라는 사적인 인연을 끊고 오로지 국민의 의중만 살폈어야 했다.

외무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것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모두 사임한 상태에다가 국무총리는 원래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4월 혁명의 공간에서 허정에게 주어진 책임은 이승만에 대한 국민의 처벌이 순리대로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승만에 대한 수사·재판·형벌집행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가 그렇게만 했다면, 

이승만은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 죗값을 치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은 재판도 형벌도 받지 않았다. 

하야 성명 뒤에 경무대(청와대)를 나온 그는, 훗날 젊음의 거리가 될 지금의 대학로를 걸어서 이곳 동편의 이화장이란 사저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는 한동안 편안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하야 1개월 뒤인 5월 29일 오전 9시 이전에 전세기를 타고 하와이로 도주해버렸다.


흔히 '하와이 망명'이라고 하지만, 망명보다는 도주라고 불러야 한다.

국민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이른 새벽 이화장을 나와 비밀리에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런 식으로 사법 처리를 회피했다.

망명이라는 고급스런 단어를 붙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도주한 이승만은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하와이에서 5년간 편안하게 여생을 보냈다. 물론 마음은 편치 않았겠지만, 몸은 편했다.

감옥 바닥보다는 편안한 곳에서 살았다.


 사저인 이화장의 집무실에 걸린 이승만 사진. 이화장은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에 있다.
ⓒ 김종성


그런데 대역죄인 이승만이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준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허정 권한대행이었다.
1960년 5월 30일자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비행기에 탑승하는 이승만 부부를 배웅한 사람은 두 명이었다.
허정 대행과 이수영 외무차관이었다.
시인 김수영은 종이에다가 '그놈과 결별하자'고 선언하고, 외무차관 이수영은 공항에서 '그놈'과 작별을 했던 것이다. 


이승만을 해외로 빼돌리는 과정에서 허정이 한 역할은 공항 배웅만이 아니었다. 위의 보도에 따르면,

5월 중순부터 2주 동안 허정은 월터 매카너기 주한미국대사와 합동으로 이승만의 미국 망명을 비밀리에 기획하고 추진했다.

이승만 도주 당시까지, 허정의 권한대행 수행기간은 약 1개월, 그중 절반에 가까운 2주라는 시간을 이승만 도주를 돕는 데 할애했던 것이다.

국민의 뜻에 따라 대역죄인 처벌을 도와도 시원찮을 사람이, 국민의 뜻을 거역하고 대역죄인을 빼돌리는 일에 온 정신을 쏟았던 것이다.

위의 보도에 의하면, 약 2주간 미국대사관과 준비 작업을 벌인 허정은 28일 오전부터 자기 직속인 외무부 직원들을 동원해서 여권발급 사무를

신속히 진행해 그날 안에 완료했다. <동아일보>는 "완료해버렸다"는 표현을 썼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신속히 처리했던 것이다.


미국대사관도 보조를 맞췄다. 28일 오전 이승만 입국비자 신청을 받은 그들은, 신속히 절차를 진행해서 오후에 비자를 발급해주었다.

허정이 미국의 협조를 얻는 데 만전을 기했기 때문에, 미국도 지극 정성으로 협력했던 것이다.

허정은 비밀리에 이승만 도주를 추진했지만, 그의 움직임은 사전에 어느 정도 노출됐다. 이승만 부부와 미국대사의 비밀 회동을 주선하고

이승만의 용산 미8군 병원 방문을 주선하는 방법으로 그가 이승만과 미국의 작전 협의를 돕는 과정이 언론에 포착됐던 것이다.

이렇게 사전에 노출된 결과, 5월 29일 아침에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이승만이 이화장을 나와 김포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그날,

국내 신문에서 이승만의 망명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나온 것이다.


5월 29일자 <동아일보>에서는 이승만 부부의 미국대사관저 방문과 이승만의 미군 병원 방문 등을 근거로 이들이 미국의 협력 하에 

해외에 망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승만이 비행기에 올라타던 날에 이런 보도가 나왔던 것이다. 

국민들은 이승만이 도주한 뒤에야 이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도주가 확정적으로 보도된 것은 다음 날이었다. 

이처럼 허정의 이승만 구하기 작전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황교안도 '베리 굿' 외치게 될까

 이화장 정문.
ⓒ 김종성


허정의 권한대행 임무는 윤보선이 제4대 대통령에 당선된 1960년 8월 12일에 끝났다. 대략 100일 정도 권한대행을 했던 것이다.

허정 대행의 비서실장이었던 장일강이 1997년 6월호 <한국논단>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권한대행 퇴임 직전에 장일강이 작성한 마지막 연설문을 읽어보던 허정은 "대과(大過) 없이 과도정부 100일을 마쳤다"는 문구를 보더니 

잠시 시선을 멈추었다.

허정은 '대과 없이'에 붉은 색 밑줄을 긋고 "Very Good!"이라고 말했다고 장일강은 증언했다. 자기 주군을 무사히 도피시키는 한편,

4·19 열기를 누그러뜨리는 데까지 성공했으니, 그의 입장에서 '베리 굿'이라 할 만도 했을 것이다. 


작년 12월 9일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황교안 대행도 허정처럼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 

허정 때처럼 박근혜를 해외로 도피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정상적인 사법 절차를 훼방하는 방법으로 박근혜의 '법적 도피'를 도울 

가능성은 꽤 농후하다. 박근혜를 구하거나 아니면 박근혜에 대한 처벌을 최소화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그 역시 '대과 없이' 일을 치른 자기 자신에게 '베리 굿'의 찬사를 던질지 모른다.     [일부발췌]



http://v.media.daum.net/v/20170224213503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