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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행과 들꽃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님의 향기...

뉘우침과 사과 없는 일본에 던진 ‘돌직구’

by 서랑 (瑞郞) 2014. 2. 20.

                                                                                                                                        윤태영 전 참여정부 청와대 부속실장

 

2004년 2월의 마지막 날,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있었고 그는 북악산 정상에 서있었다. 아직 바람은 차가웠다.

4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29일이었다. 다음날은 3·1절이었다. 그는 홍보수석실의 비서관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정상에 오른 그는 남쪽 관악산을 향해 쭉 뻗어있는 세종로를 응시했다.
“인조가 청에 항복하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동행한 비서관들에게 던진 물음이었지만, 그것이 대통령 자신에게 던진 질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대한민국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있었고, 대한민국의 현실이 있었고, 그 미래가 있었다.
그는 북악산 정상에서 인조의 항복으로 뒤틀려버린 조선의 운명을 되짚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로 다가온 3·1절 연설에 한일관계의 장래를 위해 담아야 할 내용을 가다듬었다.

적어도 이즈음까지만 해도 그는 일본의 전향적인 자세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취임 초기부터 유지해왔던 우호적 기조를 가급적 견지하려는 입장이었다. 다만 무언가 준엄한 경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상대가 자제하는 동안 최선 다하라

 

하산한 후 가진 관저 오찬에서 대통령은 그런 생각이 담긴 기조를 구술하면서 연설팀에 전할 것을 나에게 지시했다.

거기서 나의 착오가 있었다. 그 구술을 활용하여 3·1절을 맞는 대통령의 심경을 대변인이 언론에 설명하라는 뜻으로 잘못 받아들인 것이었다.

결국 그 내용은 연설팀에 전달되지 못했다. 새로운 구술이 반영되지 않은 채 연설문은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그는 3월 1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심하게 질책을 했다.

이날의 기념사는 그때부터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메모 형태의 연설쪽지를 마치 완성된 원고처럼 연대에 놓고 연설을 마쳤다.

그것이 평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이 완벽하게 작성된 원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일본을 향해 힘주어 강조했다.

 

 

 

 

 

“일본에 대해서 한마디 꼭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이, 한국의 정치지도자가 굳이 역사적 사실을,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법·제도의 변화를,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관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소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만들어 가야 될 미래를 위해서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얘기들을 절제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뜻으로

우리 국민들은 절제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정부는 절제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들은 흔히 지각없는 국민들이 하더라도,

흔히 인기에 급급한 한두 사람의 정치인이 하더라도 적어도 국가적 지도자의 수준에서는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국민들이, 우리 정부가 절제할 수 있게 일본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 이상의 말씀은 더 드리지 않겠습니다.”

 

좌시할 수 없는 '침략의 역사' 정당화

 

1년 후인 2005년, 설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그는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만찬을 함께했다. 이종석 NSC 사무차장이 배석했다.

이날의 주제는 일본이었다. 대통령이 꿈꾸고 있는 동북아 공동체의 걸림돌은 이제 북한뿐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일본이 더 큰 걸림돌이었다.

2005년 들어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이 심상치 않았다.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보듯이 일본은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고속도로 한복판에 바윗돌을 그냥 두고 봉합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적대하는 자세로는 과거는 물론, 미래의 문제도 풀 수 없습니다.

과오를 씻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새로운 질서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쪽은 밝히려 하고 한쪽은 감추려 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 일본이 독일처럼 해주기를 바랍니다. 유럽의 질서가 그렇게 된 것은 프랑스와 폴란드가 관대한 것이 아니라 독일 스스로의 선택입니다.”

2월 말과 3월 초에는 두 가지 큰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나는 취임 2주년 연설이었고 다른 하나는 3·1절 연설이었다.

생방송으로 시청자들에게 직접 중계되는 연설인 경우 대통령은 두 배 이상의 공을 들였다.

언론의 잣대에 의한 여과나 첨삭 없이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직접 생중계되는 연설을

선호했다. 광복절 등 주요 계기의 연설과 기자회견 등이 그런 범주에 속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취임 2주년 연설도 중요했지만 며칠 후로 예정된 3·1절 연설도 무거운 비중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더욱이 일본 시마네 현에서 독도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등 한일관계가 심상치 않은 길을 걷고 있는 마당이었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화해는 진정한 사과와 배상 뒤에 오는 것

 

3·1절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2월 27일 일요일, 대통령 내외는 손녀를 데리고 경호실의 버스에 올랐다.

불현듯 독립기념관을 가보고 싶은 생각에 나들이를 나선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에 대한 섭섭함과 배신감으로 불편한 그의 심경을 일본의 여러 움직임들이 더욱 뒤틀리게 하고 있었다.

그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현실이 아닌 역사의 문제로서 한일관계를 되짚어보고 싶었다. 아직 3·1절 연설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독립기념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는 구한말 의병들의 무기가 전시된 곳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무기라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관람을 마친 대통령 일행은 병천순대로 점심식사 후 귀경길에 올랐다.

그는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 무언가를 부지런히 메모했다.

다음날 그는 이 메모를 중심으로 연설팀에게 새롭게 구술을 한 끝에 3·1절 연설을 완성했다.

 

“두 나라 관계 발전에는 일본 정부와 국민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그리고 화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 세계가 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보편적인 방식입니다.”

강한 톤의 연설이었다. 일본은 곧바로 못마땅한 표정을 드러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한국의 국내사정을 감안한 연설이라고 대통령의 3·1절 연설을 폄하했다.

대통령은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기록해두도록 했다. 대외공표용이 아닌 기록용이었다.

“나는 국내사정을 가지고 정치적 발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감정적 대응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논리이다. 국내사정을 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인 노무현이 사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감정과 대의명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 취지로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지금도 역행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다시 1년여의 시간이 지난 2006년의 4월 중순. 이번에는 일본 측의 독도 해역 탐사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는 참모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대응을 단호하게 주문했다.

‘일본이 실제 우리 경제수역 내로 침범하여 해저탐사를 할 경우 이는 명백한 도발행위이므로 안보회의를 소집하고 강력히 경고하고

나포 등 단호하게 대응할 것. 일본의 분쟁지역화 전략에 말려들기 때문에 무대응해야 한다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강경하게 대응할 것.

이와 관련하여 해양법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명확히 정리해놓을 것.’

대통령은 ‘정치든 외교든, 기개로 하는 것이지 기교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4월 25일,

대국민특별담화를 했다.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한의 역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역사의 땅입니다’로

시작하는 이 담화는 ‘독도는 주권문제로서 도발엔 정면 대응하겠다’, ‘조용한 외교 끝났다’는 요지로 모든 신문의 머리를 장식했다.

 

 

[2004년 제85주년 3·1절 기념사 전문보기]

[2005년 제86주년 3·1절 기념사 영상보기]

[2006년 4월25일 한일관계 특별담화 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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