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재> 저는 이게 이중의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을 합니다.
경제가 성장하는 데에 국민들은 상당 정도 웬만한 편법과 반칙은 눈감아 준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눈감을 수밖에 없었고요. 워낙 강하게 몰아쳤기 때문에.
저임금에 12시간 노동을 하거나 18시간 곱빼기 노동을 하면서 그걸 버텨왔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반칙을 범한 자들과 사주한 자들이
성장의 열매들을 독식하는 과정에 상대적 박탈감들이 상대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이건 바로잡아야 한다,
민주화해야 된다라고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정치권력에 의해서 호되게 당해 왔습니다.
◇ 정관용> 다 잡혀갔죠.
◆ 이영재> 이게 상당한 후유증을 낳게 되는데요. 이걸 경험했던 세대들이 자녀 세대들에게는 사회일에 개입하지 말아라, 너만 잘되면 된다.
나중에 높은 자리 가서 바꿔라라는 말을 신신당부할 수밖에 없었죠.
◇ 정관용> 맞아요. 저희 어렸을 때 그런 얘기 듣고 자랐습니다.
◆ 이영재> 그런데 이게 문제가 뭐냐 하면 일제강점기 동안에 독립운동했던 분들이 대접받지 못했던 사회를 이분들의 부모세대들은
또 봤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이중적인 전달과정이 되는데요.
우리 사회적 관습들이 두 번에 걸쳐서 우리를 앞만 보고 달려가는, 그래서 우리 사회 속에 상부상조나 공동협력의 어떤 전통들은 대부분
망가졌다고 보여지고요.
이제는 협력과 연대가 아니라 어떤 경쟁과 편법. 이것만 남아서 경제가 아무리 성장한다고 해도 저는 앞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이
상당 부분 훼손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그래요. 이 책의 주요한 내용 중에 보면 1970년대에 여성 노동자로 살던 분들을 지난 몇 년 동안 직접 인터뷰하신 내용들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때 공순이로 불렸죠. 그러다 노동운동에 참여하면 빨갱이로 불렸던 그런 분들인데. 그분들은 박정희 시절을
어떻게 회고하던가요?
◆ 이영재> 태어나면서 글자를 알 때쯤 됐을 때부터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참 일을 할 때도 박정희 대통령이었고요. 그래서 정부는 불변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 정관용> 대통령은 한 사람.
◆ 이영재> 네. 그리고 이제 상당히 두려웠다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점차 공장에서 받는 여러 불합리함들이나 개선하고 싶었던 부분들을
노동청을 찾아가서 호소를 해 봐도 혼나고 오는 게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불려가서 호되게
당하기도 하고 위협도 당하고 하면서 오히려 그런 두려움들보다는 지금 내가 알고 있었던 정부가 우리 정부인가에 대한 회의들이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 인터뷰 중에 기억나는 말들은 정부가 정부다울 때 살맛이 나는데 이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모르겠다는 얘기들을 여러 선생님들이 이제 해 주셨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이영재> 그리고 그 당시에 대부분 이제 해고가 되거나 범법자가 되셨는데요. 지금은 후회하지는 않는다라고 얘기들을 하시고요.
그리고 그분들이 또 감사하게도 사회 곳곳에서 지금도 중요한 역할들을 좀 하고 계십니다.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든지. 그래서 조금 더
우리 후세들은 정부다운 정부에서 살게끔 해 주게 하고 싶다는 게 그분들의 바람이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지금 그 바람이 또 깨지고 있네요. 그 박정희 시대의 유산 가운데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어떤 거라고 보세요?
◆ 이영재> 저는 그때 남아 있던 경쟁과 편법이라고 하는 건 오히려 더 강화되지 않았는가라고 생각이 되고요.
이게 어떤 현상을 만들어내냐면 이제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문제나. 그래도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얘기도 좀 나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 점차 사교육시장이나 여타 넘어갈 수 없는 유리벽의 계층들이 존재하게 됐고요. 제가 놀랐던 사실은 서울에 이제 특정구와
특정구가 경제력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꾸는 꿈이 다르더라는 겁니다.
◇ 정관용> 꿈이 다르다?
◆ 이영재> 한쪽에서는 검찰총장, 과학자, 대통령들을 꿈으로 이야기하는데 한쪽 구에 있었던 모 구의 학생들은 중학생들입니다.
PC방 주인.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라고 했더니 우리 부모님들이 고생할까봐 그리고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뒷받침을 자기가 고려를 해 봤을 때는 더 큰 꿈을 꾸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더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게 지금 우리 한국사회의 현주소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요. 오히려 그 편법과 경쟁들이 훨씬 더 심화된 거 아닌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금수저, 흙수저의 꿈 차이가 아주 피부에 와닿는군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되고 그것에 큰 바탕은 제가 처음
시작하면서 얘기했습니다만 박정희 향수. 조금 점잖은 표현으로 향수지 이게 일종의 신화이고 주술화다, 이렇게 말씀하신 거 아니겠어요?
그게 지금도 한편에서는 계속 유지되는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 이영재> 저는 이제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박정희 대통령 시기가 일방적으로 강제만 했던 시기는 아니었더라고요.
그 당시에 만들어졌던 소위 관변단체 빅3가 있습니다. 새마을중앙회, 바르기살기중앙협의회, 자유총연맹을 흔히 빅3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이 외에도 이제 몇몇 관변단체 지원에 관한 특별법들이 당시에 만들어집니다. 이 세력들이 어느 정도의 규모냐면 일선구에 시민사회단체
지원에 관한 예산들을 보면 70% 가까운 돈들이 이때 만들어졌던 관변단체의 고정비로 지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는 시민사회를 동원하기 위해서 만들어냈던 관변의 효과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이제 또 하나는 교육의 영역을 박정희 정권 시기 동안 상당 정도 국정화하면서 독점해 왔던 그 후유증들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 정관용> 지금 국정교과서 여전히 강행되고 있잖아요. 집필진도 밝혀지지 않은 채.
◆ 이영재> 맞습니다.
◇ 정관용> 이런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영재> 저는 이게 뉴라이트라고 이제 지칭되는 세력들이 마지막 역사의 정점을 좀 찍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제 최초의 것은 이거입니다. 일제식민지 덕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 이게 식민지 근대화론의 요체라면 저는 이 논리는 조선총독부에
충성을 다했던 매국세력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죠.
최근에는 사면 수준을 넘어서 건국이라고 하는 상장을 주자는 논리로 이제 비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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