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파악 제대로 못하는 지도자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재외공관장들을 대상으로 한 첫 간담회와 청와대 초청 만찬을 가졌다.
'국정 운영 방향 공유를 위한 간담회'로 정부를 대표해 외국에 나가 있거나,
곧 부임하는 재외공관장들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전파할 수 있도록 대통령과 관련 수석이 직접 설명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이때 박 대통령은 "재외공관은 한국에서 오는 손님 대접에만 치중하고 교민들의 애로사항엔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많았다"며
"앞으로 재외공관은 본국의 손님을 맞는 일보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주셔서 앞으로 이런 비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재외국민이나 동포들의 어려움을 도와주지 않는 재외공관은 존재 이유가 없다"고 했다.
교민에 대한 서비스 개선을 강조한 모양인데 어쩐지 듣기에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윤창중 사건을 당하고도 그 사건의 본질을 깨닫지 못했거나 비켜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설마 그동안 공관장들의 잘못된 업무관행 때문에 윤창중 사건 같은 것이 터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본말을 흩트리는 듯한 훈시라 하겠다.
아무렴 공관장들이 그동안 본연의 임무도 망각한 채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까? 물론 출세를 바라는 극히 일부 몰지각한 공관장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관장들은 어쩔 수 없이 본국 국회의원, 관료들의 하인 노릇을 한 게다.
윤창중도 그렇게 모셔야 할 인물 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들은 갑(甲)이고 공관장들은 그들의 을(乙)도 아닌 밥임을,
그러지 않았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를 수차례 전임 대통령의 특사로 해외 각처를 다녀 본 대통령이 모를 리 없을 터.
그런 한국의 갑(甲) 아닌 갑(甲)들이 공관 활동비 예산의 절반 정도는 그렇게 다 갉아먹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모시기 위한 하녀 노릇 때문에 시간과 노력은 물론 밥값, 술값까지 다 빠져 나간다.
심지어 못된 손님 시중들다 여자까지 챙겨주는 바람에 영수증 처리 못해 개인 돈까지 착취당한 적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을 감시해야 할 기자들도 기실 공관원 괴롭혔다는 비난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예전엔 대통령 해외 순방에 따라 나가는 걸 휴가로 여기는 관행이 없지 않았다.
함께 따라간 돈 많은 기업인들이 1차, 2차 밥값 술값에다 거마비까지 두둑하게 챙겨주던 호시절도 있었다.
그래야 기사를 호의적으로 써주고 웬만한 실수는 눈감아 주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윤창중도 기자 시절 그런 경험 없지 않았을 게다.
공관장들에겐 그럴 힘이 없다
이번에 대통령이 그런 주문을 하기 전에 먼저 지난 미국 방문 때 금간 바가지 들고 나갔다가 나라 망신시킨 일부터 사과했어야 했다.
자신이 직접 간택한 대변인이 저지른 추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로 인해 일선 외교관들 얼마나 맥 빠졌겠는가.
그런 다음 “그동안 본국의 몰염치한 손님 아닌 손님들 때문에 많이 시달렸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절대 그러지 못하도록 할 테니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길 바란다.
만약 이후에 그런 일이 또 있으면 공관에 파견 나가 있는 국정원 직원더러 철저히 보고케 해서 응분의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정이 안 되면 여러분들이 청와대 비서실로 직접 전화하라”고 하였어야 했다.
이번 일을 거울삼아 외양간 제대로 고치고 CCTV 카메라까지 설치해서 소도둑들이 얼씬도 못하게 할 테니
여러분은 열심히 농사일에 전념하기 바란다고 하였어야 했다는 말이다.
헌데 외양간 시스템은 그대로 놔두고 소들이 야위었느니 어쩌니 나무랐으니 과연 훈시대로 바뀔지 신뢰가 안 간다.
더구나 국정철학 ‘공유’ 간담회의 주최자, 즉 호스티스격인 대통령이 일방적인 훈시 20분을 발언한 뒤,
철학 공유에 필수불가결한 주파수 상호 맞추기 위한 질문도 받지 않고 곧바로 퇴장해 버렸다.
이어 막말 표현 그대로 깐 이마 또 깐다고 청와대 수석들의 줄 특강이 이어졌다.
스크린에는 ‘재외공관장회의’라고 써붙여졌다. 헌데 이게 무슨 회의인가? 언제부터 청와대가 외교관들 교육까지 담당했던가?
저녁 때 부인까지 대동한 만찬자리에서 다시 마주친 촌티나는 벽면 스크린이 현실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청와대부터 먼저 바뀌어야
격려받아야 할 자리에서 힘들게 일한 죄밖에 없는 공관장들이 혼난 것 같아 안쓰럽다.
저녁엔 정상적인 대화 소통이 좀처럼 불가능할 엄청나게 큰 테이블에서 부부 동반 만찬까지 있었다고 한다.
비서관들이 대통령의 ‘낮’ 발언요지를 사전에 다듬고 점검해서 오해의 소지를 없앴어야 했다.
그리고 ‘밤’ 식탁테이블은 미 백악관에 벤치마킹하여 작은 기침소리도 바로 들릴 소통형 최소 사이즈로 바꾸어야 했다.
그에 앞서 공항에서부터 현지 공관원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는 국회의원이나 관료라면 뭣 하러 외유 나가는지,
또 나가서 뭔 대단한 성과물을 가져올 수 있을지 의아스럽다.
배지 달기 전에 그 정도의 글로벌 내공은 갖추었어야 하지 않은가. 그게 자신 없어서 떼 지어 몰려나가는가?
그럴 바에야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게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되겠다. 염치가 남았다면 소리 소문 없이 여행이나 다녀오든지.
이 나라에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지도층 인사들의 보다 높은 도덕 수준을 주문하지만 그게 다 공허한 구호임을 모르는 국민 없다.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더 저급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긴 개인, 그것도 권력을 가진 자의 양심이나 도덕 수준을 무엇으로 증명하고 가늠하랴?
차라리 그 위치에 걸맞은 ‘매너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청와대의 외교 특강보다 ‘글로벌 매너 특강’이 더 급하지 않을까 싶다 (원글 일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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