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리본을 타고 지난 3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 끝에는 세월호가, 세월호에 타고 있던 304명 희생자가,
가라앉는 세월호를 보며 울던 이들이 있다. 2014년 4월 말 시민들은 같은 마음으로 노란 리본을 달았다.
‘무사 귀환.’ 이 가망 없지만 간절한 바람을 담아 옷깃에, 가방에, 카카오톡 프로필 등에 노란 리본을 걸었다. 민·관도, 여·야도 모두 동참했다.
카메라 앞에 선 연예인과 운동선수는 물론 길거리 교통경찰도 가슴팍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국무총리·장관과 새누리당 의원들도 노란 리본을 달고 일정에 참가했다. 전국의 사찰과 성당과 교회 건물에도 노란 리본이 걸렸다.
모두가 슬퍼하며 추모했고 아무도 딴지를 걸지 않았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말이다.
노란 리본이 누군가에게 ‘조롱’과 ‘공격’의 대상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그 처음을 열었다.
당시 SNS 등지에서 널리 퍼지던 나비 모양 리본 이미지를 슬쩍 일베의 표식인 ‘ㅇㅂ’으로 바꾸어 유포한 것이다(아래 왼쪽 그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일주일이 되지 않은 시기였다.
일베 회원이 최초로 노란 리본을 ‘조롱’했다면, 노란 리본을 처음 ‘공격’한 측은 박사모 회원들이다. 2014년 4월3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화가
안산 세월호 분향소 밖으로 쫓겨났다는 소식을 접한 박사모 회원들은 “노란 리본 달고 계신 분 있으면 떼어내라”는 글을 올렸다.
“노란색만 봐도 역겹다” “친노 좌빨 색깔이라 나는 진즉에 떼어냈다”라는 댓글 따위가 횡행했다.
곧이어 노란 리본 ‘테러’가 빈발했다.
2014년 5월3일, 노란 리본 그림이 그려진 세월호 참사 추모 대자보를 두세 명의 남성이 웃으며 찢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남성들은 마지막에 ‘일베 인증’ 손 모양을 취했다. 노란 리본이 불에 타는 모습을 담은 포스터(아래 오른쪽)도 그해 5월 초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추모, 빨갱이가 하면 선동이 됩니다”라는 문구가 함께 붙었다.
■ 비극 앞에서 ‘추모 금지’하는 나라
일베와 박사모에 이어 ‘노란 리본 떼기’에 앞장선 쪽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였다.
2015년 4월16일,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이미 극심했을 때이지만 그래도 1주기이니만큼 여야 국회의원과 각 부처 장관 등이
모두 달았던 그날 박 대통령은 홀로 노란 리본을 달지 않은 채 팽목항을 20분간 둘러본 뒤 남미로 해외 순방을 떠났다.
정부는 일찌감치 노란 리본을 불온한 표식으로 간주하며 ‘세월호 추모 금지’ 작업을 시작했다.
참사가 나고 한 달이 되기 전인 2014년 5월9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하던 날, 가슴이나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은 청와대 근처 길을 자유로이 통행할 수 없었다. 경찰이 ‘불법 집회 참가 가능성’이 있다며 통행을 막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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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에는 교육부가 ‘학교에서 노란 리본을 달지 말 것’을 학교 교원과 학생들에게 지시하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 교육청에 보내기도 했다.
“교육 활동과 무관하고 정치적 활동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6월26일에는 경찰이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추모 천막에 들어가 유가족들이 만들어서 걸어놓은 노란 리본들을 압수했다.
‘신고하지 않은 불법 시위용품’이라는 것이었다. 같은 달, 유엔 인권이사회는 집회·결사의 자유에 관한 한국 보고서를 통해
“세월호 참사는 명백히 정치화됐고 희생자 가족들의 상징인 노란 리본은 반정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법치의 주요 요소인 책임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을 정부를 흠집 내려는 시도와 동일시하는 것은 민주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 교황이 말했다 “고통 앞에 중립 없다”
“노란 리본을 떼라”는 지시는 2014년 8월 방한 당시 일정 내내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전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그러자 교황은 그렇잖아도 한국에 와서
노란 리본을 단 지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요청한 사실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일부 발췌]
☞ http://v.media.daum.net/v/2017041518084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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